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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 반포한 내 뜻을 곡해하지 말라

내가 훈민정음을 창제 반포한 동기를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한 여러 기록에 분명히 밝혔는데도 아직도 한자음 발음기호 정도로 폄하하고 곡해하는 후손 학자들이 있어 너무 안타까워 바로잡기로 한다. 마침 타임머신을 타고 나를 인터뷰한 김슬옹이란 학자가 있...

내가 훈민정음을 창제 반포한 동기를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한 여러 기록에 분명히 밝혔는데도 아직도 한자음 발음기호 정도로 폄하하고 곡해하는 후손 학자들이 있어 너무 안타까워 바로잡기로 한다. 마침 타임머신을 타고 나를 인터뷰한 김슬옹이란 학자가 있어 내 말투만 바로잡아 다시 알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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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대왕이시여, 대왕이 닦아 놓은 길을 걷고 있는 21세기 후손이, 대왕을 뵈옵니다. 2022년은 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지 579돌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와 후손을 대표하여 훈민정음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많아 직접 여쭙고자 이렇게 뵈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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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어서 오거라. 그대가 훈민정음을 연구하고 과인에 관한 학문(세종학)을 세우고 있다 하니 참으로 가상하도다. 과인도 과학자이지만 미래 과학이 참으로 놀랍구나. 순간이동으로 과거의 과인을 만나러 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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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황공하옵니다. 그럼 곧바로 질문을 올리겠사옵니다. 가장 궁금한 것은 훈민정음을 만든 동기이옵니다. 대왕께서 직접 저술하신 《훈민정음》 해례본 ‘어제 서문’에서 한자 모르는 백성들의 소통과 표현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들었다고 하셨지만, 일부 학자들은 한자음 표기가 더 중요한 창제 동기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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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허허. 과인이 왜 만들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밝혀 놓았는데도 그 맥락을 오해하는 후손들이 있었도다. 과인이 거꾸로 그대에게 묻노라. 한자음은 누구에게 왜 필요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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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한자는 양반만이 습득이 가능했으므로 한자음을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는 양반에게 주로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중국과 한문으로 된 문서를 주고 받아야 하니 정확한 음을 알아야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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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그렇게 보면 과인이 양반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과인이 직접 쓴 서문 취지와 모순되지 않느냐. 과인이 양반들을 위해 만들었다면 또는 한자음만을 적기 위해 만들었다면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대감을 비롯하여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 집현전의 원로 대신들이 중심이 되어 반대할 리가 없지 않지 않은가? 한자음 적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일반 백성들도 비록 한자는 모르지만, 한자어는 많이 쓰고 있고 중국 황제들이 천 년 넘도록 한자음을 정확히 적고 표준음을 만들기 위해 애써왔듯이 우리에게도 한자음 적기는 똑같이 중요하고 중국과 외교문서를 주고받는 일이 매우 중요하니 한자음 적기도 매우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동기를 위해서라면 당대 최고 석학이었던 최만리 대감이 그렇게 장문의 상소를 올려 반대할 리가 없지 않은가?

▲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 어제 서문.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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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그렇다고 한자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서만 만든 것은 아니지 않사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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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그래서 과인이 쓴 서문 마지막에서 모든 백성들, 곧 평민이든, 중인이든, 양반이든, 천민이든 누구든 쉽게 배워 편안하게 생활하게 할 따름이라고 한 것이니라. 어떤 특정 계층만을 위한 문자는 소통이 되지 않으니 의미가 없지 않느냐. 한자도 모든 백성이 쓰라고 한 것이지만 너무 어려우니 특정 신분만이 가능한 문자로 전락한 것이고. 아무튼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정인지 대감이 정리한 꼬리말에서도 모든 백성들이 깨우칠 수 있도록 해례본을 펴내라고 했다고 써 놓았다. 물론 일차적인 창제 동기와 목적은 한자 모르는 백성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표현과 소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정인지 대감이 정리한 서문 첫머리에 나와 있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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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문자가 있게 마련이다.”라는 구절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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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그렇지. 한자와 한문을 빌어 우리말을 적는 것은 마치 네모난 구멍에 둥근 도끼 자루를 끼우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자음이든 토박이말이든, 천둥소리든 개 짖는 소리든 그 어떤 소리라도 맘껏 적을 수 있는, 제대로 바르게 적을 수 있는 문자가 필요했던 것이니라. 그리고 문자라는 것이 소리만 적는 데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과 같은 성현의 말씀을 적은 책의 표현 도구, 또는 학문이 가능한 도구, 재판 기록을 정확히 적어 재판관들은 정확한 판결 도구로 삼고 죄수들도 읽을 수 있는 문자, 이런 실용성을 두루 갖추어야 제대로 된 문자이지 않느냐? 그래서 정인지 대감도 정음 28자만 배우면 학자들은 정확한 뜻을 더 잘 풀어낼 수 있고 죄를 다루는 관리들도 누구에게도 억울하지 않은 명확한 기록을 할 수 있는 문자라고 한 것이지.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양반 사대부들이 정음이 두려웠던 것이오. 혹시라도 한자, 한문을 통해 중화의 문명을 따르고 배우고 소통해야 하는데 한자보다 더 뛰어난 소리 문자가 나와 한자의 권력을 대체할까 봐 그것이 두려웠던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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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그럼 자연스럽게 두 번째 질문으로 옮겨가옵니다. 아직도 많은 후손들이 훈민정음을 집현전 8학사(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강희안)들과 함께 만들었다고 알고 있는데 이런 공동 창제설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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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한자가 생명이요 권력인 양반 사대부들이 어찌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겠으며 또 그런 문자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8학사들은 창제 후에 새 문자를 널리 알리는 책을 만드는 데 참여한 것뿐이니라. 그들조차도 실생활에서 실제 문서용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으니 이런 사람들이 공동 창제자가 될 리가 없지 않느냐?. 그래서 과인은 비밀리에 연구할 수밖에 없었고 창제를 완벽하게 끝내고 나서야 집현전 학사들에게 알리고 그들을 설득하게 된 것이니라. 또한 비밀리에 연구한 까닭은 이러한 문자 창제는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융합 연구이니 오히려 공동 연구로는 어려운 것이니라. 물론 집현전 학사들이 문자 연구에 필요한 여러 연구를 뒷받침해 주었지만 그렇다고 공동 창제자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해례본 저술에 참여한 것만큼은 분명하니, 해례본에 이들 이름을 꼭 밝혀 놓고 그들이 무엇을 담당했는지, 나와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 밝혀 놓았는데 왜 억측을 하는 후손들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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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맞습니다. 대왕께서는 모든 인재들을 적재적소에서 각자의 재주를 빛나게 했고 장영실 같은 노비 출신조차도 이름을 크게 빛나게 했지요. 그럼 언제부터 새 문자를 구상하게 된 것이옵니까?

...
세종

그건 사관들이 실록에 기록해 놓았는데 못 보았는가? 과인은 태조께서 나라를 창업한 지 27년 만에 임금 자리에 올랐고 정치적 야심이 컸던 상왕 태종께서 정치적 기반을 안정되게 만들어 놓았으나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의 희생이 따랐고 이제는 중화 문명에 못지않은 문명국가를 이뤄야 하는 책임이 나에게 있었도다. 하늘의 이치대로 백성들이 살아가는 성리학의 이념이 제대로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고. 질병 문제, 먹거리 문제, 국방 문제, 토지세 문제 등도 제대로 해결하여 백성들이 그야말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도다. 그런 세상을 위해서 정치와 제도 개혁 등도 중요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식과 정보를 일반 백성들도 알게 하는 것이었고 그 답은 책에 있었느니라. 과인이 임금이 된 지 8년, 상왕께서 돌아가신 지 3년쯤 지난 1426년 10월 27일 어전 회의에서 한자나 이두의 어려움을 토론한 적이 있느니라. 이때부터 과인은 한자와 이두가 가진 문자로서의 모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 것이다. 제대로 된 나라를 위해서는 법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법을 쉽게 가르쳐 백성을 교화시킬 수 없다면 도대체 어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한테 만화를 곁들인 ≪삼강행실도≫라는 책을 1434년에 펴냈지만, 그조차도 별 효과가 없어 서당조차 다닐 수 없는 일반 백성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를 구상하게 된 것이니라.

▲ 그림 : 역사의 위대한 빛 세종대왕(김윤아 작)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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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그렇다면 일반 백성들이 서당을 다닐 수 있는 정책을 펴는 게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것보다 효율적이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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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그런 정책을 펴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서당에 다닌들 한문을 어느 세월에 배워 실천한단 말인가. 일 안 하고 공부만 하는 양반들조차 20년은 배워야 맘껏 한문책을 읽고 쓸 수 있는 것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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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정말 여쭙고 싶은 것은 많은데 충전이 떨어지면 미래로 다시 돌아가야 하옵니다. 마지막으로 꼭 필요한 질문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대왕께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새 문자를 널리 알린 날을 우리 후손들은 한글날로 삼아 기리고 있사옵니다. 대왕께서 해례본을 왼손에 든 대왕의 동상을 새겨 놓기도 했답니다. 해례본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옵니까?

...
세종

단지 새 문자를 알리는 해설서라면 그렇게 길고 짜임새 있는 책을 쓸 필요가 있었겠는가? 훈민정음에 담긴 보편 과학, 보편 철학, 보편 음악을 널리 알려 누구나 쉬운 문자로 그런 보편 가치를 맘껏 누리고 존중받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도다. 훈민정음에 담겨 있는 음양오행, 중성 모음에 담겨 있는 하늘과 땅과 사람의 어울림, 혀끝을 윗잇몸에 대면 나오는 [니] 소리. 이 모든 것들은 양반이든 상민이든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니, 그래서 과인이 하늘 아래 양반과 천민의 차이는 없다고 한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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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그러고 보니 해례본에 나오는 124개의 한글 표기 낱말 가운데 마지막 낱말은 ‘별’이옵니다. 일부러 이 낱말을 택한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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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그렇도다. 누구나 28자를 편안하게 맘껏 써서 별처럼 빛나길 바란 것이니라.


인터뷰 출처: 김슬옹(2019). ≪세종학과 융합인문학≫. 보고사. 275-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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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저작자(박재택,김슬옹) 동의로 공유합니다.





세종

훈민정음은 백성들과 함께 /세종

한글 집현전(Editors) 대표



댓글 1개

  1. 김슬옹 원장님이 무엇을 타고 갔다 오셨는지 모르지만, 충전 다시 하시고 한번 더 갔다 오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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