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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와 게임, 아름다운 반복

나의 어린 시절에도 다양한 놀이(게임)가 있었다. 윷놀이, 자치기, 투호, 말 타면서 공을 치는 격구, 장대로 공을 처넣는 타구, 사발만 한 구멍에 마노 공을 처넣는 격방(오늘날의 골프와 유사하다) 등등이다. 내가 임금 된 후 얼마 동안에는 상왕...

나의 어린 시절에도 다양한 놀이(게임)가 있었다. 윷놀이, 자치기, 투호, 말 타면서 공을 치는 격구, 장대로 공을 처넣는 타구, 사발만 한 구멍에 마노 공을 처넣는 격방(오늘날의 골프와 유사하다) 등등이다. 내가 임금 된 후 얼마 동안에는 상왕이신 부왕을 모시고 대신들과 함께 격방 놀이를 즐기곤 했었다. 타구할 때 잘 맞으면 공이 지붕을 넘어가기도 해서 장쾌함을 느끼곤 했었지. 대신들과 곧잘 내기를 하곤 했었다. 게임을 즐긴 것이다. 진 사람은 그날 상왕을 모시고 잔치를 벌여 참가자들을 대접했었다. 할아버지 태조는 격구의 달인이셨다 한다.

돌이켜 보면 나는 게임을 즐겼던 것으로 생각된다. 유교 이념에 얽매인 기존제도의 틀과 고집불통의 유학자들인 대신들과 부딪치면서 마치 게임을 하듯 일을 해나갔다. 책 읽기 게임, 무기개발 게임, 과학기술 게임 등등이다.

공부할 때에도 배워서 새것을 알게 되면 기쁨과의 게임, 여러 번 반복해서 익히면 그때마다 느끼는 즐거움과의 게임을 즐겼다. 운동이든 기술이든 공부든 나날이 익혀서 반복했을 때 스스로 그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느낀다면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예부터 인간들은 호기심, 더 좋은 것을 쫓는 마음, 이런 마음이 작용하여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고 불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공부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공부란 마치 괭이, 망치처럼 인생살이 농사를 돕는 도구, 연장이기도 하다. 갈고 닦고 익히면 더 쓰기 좋은 연장이 되므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먼 길을 갈 때 단순히 걸어가기보다는 말, 마차 등 탈 것을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특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래의 길을 갈 때는 더욱 그렇다.

▲ 나무 막대기를 이용해서 공을 치는 놀이. 우리말로 장치기라고 한다. ⓒ대한민속놀이연구회

갓난아기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은 본능적 운동이자 공부이다. 장수하는 노인이 온종일 움직이는 것도 공부이다. 반복해서 움직이면 습관이 된다. 즉 습관이란 오랫동안 되풀이되어 익혀진 버릇이다.

게임에 몰입하는 것은 수를 풀기 위함이다. 수를 푼다는 것은 맺힌 것을 해결하거나 그 답을 밝혀내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맺히거나 막힌 것을 풀기 위한 방법은 연구하고 공부하고 반복해서 익히는 것밖에 없다. 익힌 것이 문제의 답이라 느껴지면 익히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21세기 후손 중에 공부에 지친 누군가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을 상상하며 몇 자 더 적어본다.

‘대왕이시여! 공부는 왜 해야 하나요?’ ‘공부 안 하면 안 되나요?’ ‘막동아!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이라는 먼 길을 가게 마련이다. 공부는 네가 그 길을 갈 때 타고 갈 말이나 사용하게 될 연장과 같은 것이란다.’ ‘너도 커가면서 한 번도 가본 일 없는 그 길을 가게 될 텐데 그때 이 말을 타고 가거나 연장을 쓰게 되면 크게 도움이 된단다.’ ‘그러면 대왕님!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요?’ ‘그야 여러 가지가 있지. 일도 있고 기술도 있고 옛사람들의 경험을 얻어 익힐 책을 읽는 것 등등이 공부라 할 수 있다. 공부는 여러 번 되풀이해서 반복해야 좋은 명마가 되고 쓰기 좋은 연장이 된다. 잘 훈련된 명마일수록, 잘 다듬어진 연장일수록, 너를 훨씬 더 쉽게 훌륭한 곳으로 데려다주지.’ ‘막동아! 너는 네가 갈 길을 혼자 힘들게 걸어가겠니? 또 좋은 연장도 없이 그 길을 가겠니? 아니면 좋은 연장을 들고 명마를 타고 재미있게 가겠니?’ 막동. 머리를 끄떡인다. ‘선생님! 저 말을 키우겠어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또 말을 잘 길들이겠어요! 연장을 잘 갈고 닦아 쓰임새 있게 하겠어요.’ ‘대왕님! 처음엔 말 타기가 힘은 들었지만 재미있었어요. 일단 말을 타보니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아요. 또 내가 갈 길을 훨씬 빨리 갈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공부해라 공부해라’ 누구나 청소년기에는 이만큼 듣기 싫은 말도 없었을 게다. 그러나 늘 강하게 조여오는 말이었을 것이다. 특이하게도 나 이도는 어릴 때 매양 책 읽기를 좋아해 웃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받곤 했다. 책 읽기에 재미를 붙인 것은 10살 이전에 천자문과 소학을 마치 산수 구구단 외우듯이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익혔던 결과, 비록 새로운 글일지라도 스스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부왕 태종은 내가 세자가 이미 정해진 왕가의 셋째 아들이므로 학문에 전념하기보다는 시와 서화, 음악 등 풍류에도 관심을 두고 일생을 즐기면서 살 것을 충고하시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책읽기 공부에 전념했다. 동양의 고전, 역사, 시와 문장을 두루 읽었다. 그것도 여러 번 반복해서 익히는 것이 일과였다. 왕자인 나의 생활은 책 읽는 것 외 다른 취미가 없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나는 나중에서야 실사구시, 일과 기술을 배우는 것도 공부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장영실의 손재주와 기술, 박연의 피리와 음악에 대한 재능, 최해산의 화포제작 기술 등을 높이 평가한 것도 이러한 생각에서다. 내가 임금할 때 좋은 말을 기르기 위해 말 기르기 공부에 몰두한 때가 있었다. 결국, 명품 오명마[五明馬]를 길러 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 사복시는 오명마 등 20여 종(말의 털빛으로 구분)의 준마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데 성공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명마다. 오명만은 온몸이 검지만 네발과 이마에서 흰털이 나는 말이다. 말 개량에 성공한 조선은 당대 동아시아 최고의 말 생산국으로 인정받았다.

일과 기술 공부의 사례는, 500~600년 뒤의 일이긴 하지만, 축구선수 손흥민, 백미대왕 김종림의 본보기가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김종림은 나의 왕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미국에 이주 노동자로 이민 가서 마치 노예와 같은 생활을 극복하고 캘리포니아에 400만 평 규모의 벼농사 농장주로 성공해서 백미대왕이라 불렸다 한다. 사비로 전투비행학교를 설치하는 등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크게 도왔다고 전해진다. 실로 그는 벼농사 공부에 몰두하여 성공한 것이다.

책 읽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이 글을 썼다. 일이든 기술이든 장사하는 것이든 마음에 들어 몰두하고 반복해서 익히면 그것 또한 큰 성공을 위한 공부란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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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저작자(박재택,김슬옹) 동의로 공유합니다.





세종

훈민정음은 백성들과 함께 /세종

한글 집현전(Editor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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