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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5대 업적

나는 나라를 살찌우고 백성을 잘 살게 하려는 마음으로 참 많은 일을 하였다. 미래로 갈수록 더욱 빛나는 ‘한글(훈민정음)’을 만들었고 측우기와 물시계, 해시계 등으로 과학기술을 발전 시켰으며 이를 통해 농업 분야에서 백성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

나는 나라를 살찌우고 백성을 잘 살게 하려는 마음으로 참 많은 일을 하였다. 미래로 갈수록 더욱 빛나는 ‘한글(훈민정음)’을 만들었고 측우기와 물시계, 해시계 등으로 과학기술을 발전 시켰으며 이를 통해 농업 분야에서 백성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이외에도 의료, 복지, 교육 분야에서도 백성을 향한 실제적이면서 따뜻한 정책을 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그 모든 것을 나 혼자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김슬옹 후손이 말했다고 하는 “역사가 세종을 만들었고 세종은 그 역사를 다시 썼을 뿐이다.”라는 말이 맘에 든다. 내가 임금으로 태어나 많은 인재들과 신하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이룰 수 없는 업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나 쓰는 역사가 아니었고 임금으로서 학자로서 음악가로서 소통과 화합의 업적을 발휘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여주시의 어느 후손이 내가 생각하는 15대 업적을 물어와 소개하기로 한다.

첫째 업적은 역시 누구나 쉬운 문자로 소통하게 하는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이다. 나는 훈민정음을 10여 년 이상 비밀 연구 끝에 1443년 12월에 창제하여 1446년 9월에 반포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은 말소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만든 과학적인 문자이다.

▲ 집현전 학사도_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 © 세종신문

둘째는 건강 관련 업적이다. 아픈 이가 없게 하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백성의 질병을 치료하던 제생원과 활인원의 운영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기아와 고아 보호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시설을 늘렸다. 의학 발전과 유능한 의원을 양성하기 위해 의서습독관제를 신설하였다. 또한 의술 보급을 위해 ≪향약집성방≫, ≪태산요록≫, ≪의방유취≫ 등의 의서를 널리 펴내게 했다.

세 번째는 먹고 사는 문제인 농업 관련 업적이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밥은 백성의 하늘이니라.”라고 강조했다. 내가 우리식 농사 책을 펴내기 전에는 우리 농사 실정에 맞는 농사 책이 없어 우리나라 기후와 토질에 안 맞는 중국의 농사 책을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으니 그 결과의 참담함은 두루 짐작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올바르게 고치고자 우리나라 지역별 특성에 맞는 농사 책을 펴내도록 했고 결국 농업 생산량을 크게 높여 굶주리는 백성이 없게 하였다.

네 번째 역시 농사 관련 업적이다. 재난에 대비하고 농법을 과학적으로 관리할 것을 수시로 강조했다. 또한, 지방의 강우량 분포를 알아내는 어려움을 측우기를 발명함으로써 바로잡았다. 이처럼 비 온 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측우기를 만들고, 저수지 등의 물 높이를 잴 수 있는 양수표를 통해 홍수와 같은 재난을 대비하고 농사를 과학적으로 짓게 하였다. 측우기는 장영실이 발명했다고 하나 사실은 왕세자 이향의 아이디어를 장영실이 완성한 것이다. 농민에게 농사 시기를 정확히 알리고자 시간과 24절기를 알려주는 앙부일구도 큰 구실을 하였다.

▲ 측우기도_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 © 세종신문

다섯째는 복지 분야다. 내가 노비 부부에게 출산 휴가를 준 사실은 이제 널리 알려진 듯하다. 내가 임금이 돼서 보니 관청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아기 낳고 7일 만에 나와서 일을 하는 현실을 보고 한 나라 지존으로서 부끄럽기까지 했다. 비록 노비가 사람이 아니라고 하나 천 년 넘게 이런 제도가 유지되어 온 것이 놀랍고 화가 날 정도였다. 남편에게까지 출산 휴가를 30일 준 것은 아기는 엄마만 키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는 최초의 여론조사로 백성의 뜻을 들은 업적이다. 나는 관리의 부정으로 농민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논밭에 대한 전세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1430년 3월부터 8월까지 여론조사를 하여 전국 17만여 명의 백성들이 투표에 참여, 9만 8,657명이 찬성, 7만 4,148명이 반대의 결과를 얻어 냈다. 이는 내가 백성들의 뜻을 직접 들으려는 나의 정치 신념 때문이었다.

일곱 번째, 지리서를 만들어 국토를 정비하였다. 나는 전국의 국토를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계인 기리고차를 만들어 과학적인 지리서를 완성하였다. 기리고차는 일정한 거리를 가면 나무인형이 북 또는 징을 쳐서 거리를 알려주는 반자동 거리 측정 장치이다.

▲ 육진개척도와 대마도 정벌도 _세종대왕기념사회 소장 © 세종신문

여덟 번째 업적으로는 남북으로 국방을 튼튼히 하여 나라를 태평하게 한 것을 뽑겠노라. 나는 잦은 왜구의 침략으로 백성이 피해를 보자 상왕 태종의 도움을 받아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더불어 북쪽 여진족의 노략질에 대응하기 위하여 문인 출신 명장 김종서와 무인 출신 명장 최윤덕으로 하여금 4군 6진을 정비하여 오늘날 국토의 경계를 분명히 하였다. 또한, 이 지역에 백성들이 없어서 국방력이 약해질 것을 염려하여 남방의 백성을 이주시키는 사민 정책을 폈고, 그 지역 사람을 그 지방의 관리로 임명하는 토관 제도를 시행하였다.

▲ 서운관도. _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 © 세종신문

아홉 번째는 천문과학의 업적으로 하늘의 이치를 정확히 파악하여 세계의 중심에 서게 하였다. 나는 궁궐에 천문 관측소 간의대를 설치하고 종합과학연구소인 흠경각을 지어 조선의 과학 수준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흠경각은 침실인 강녕전 옆에 붙어 있어 여기에서 밤낮으로 연구하였다. 이곳에는 각종 천문 기기를 비롯하여 세계 최고의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 등이 설치되어 백성을 위한 과학 연구를 수행하였다.

열 번째 인쇄출판 업적으로 인쇄술을 발전시켜 출판문화의 꽃을 피우게 하였다. 나는 인쇄술을 끊임없이 개량하여 문화의 꽃인 출판문화를 크게 드높이게 하였다. 인쇄 개량 전에는 글자를 구리판에 새겨 놓고 사이사이 납을 끓여 부어 단단히 굳은 뒤에 찍었기 때문에 납이 많이 들고 하루에 찍어내는 것이 매우 적었다. 이때 내가 남급으로 하여금 구리판을 다시 주조하여 글자의 모양과 꼭 맞게 만들었더니 납을 녹여 붓지 아니하여도 글자가 이동하지 아니하고 더 정확하여 하루에 많은 양을 찍어낼 수 있었다.

열한 번째 역사 바로 세우기에 온 힘을 기울였다. 나는 임금이 되자마자 잘못된 ≪고려사≫를 바로 잡게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통치 내내 매달려도 못 끝냈을 정도로 역사 기술을 철저히 하고자 했다. 결국 내 아들 문종 때 와서야 완성된다. 또한 단군 사당도 정비하는 등 민족의 뿌리 세우기에도 앞장섰다.

열두 번째 교육 업적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게 하였다. 인재양성이야말로 국가발전의 바탕임을 실제 정책으로 시행하였다. 나는 임금이 된 지 바로 다음해에 국책 연구소인 집현전을 크게 일으켰는데 이는 왕에게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는 경연, 세자를 교육하는 서연, 도서의 수집 보관 및 이용, 학문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었다. 집현전의 인재들에게는 국가에서 책이 나오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도록 하고, 능력 있는 학사에게는 집이나 사찰에서 연구를 맘껏 하게 하는 사가독서를 시행했다. 또한 젊은 인재 유학 보내기를 통해 인재를 양성하였다.

열세 번째는 책을 통한 교육만이 살길이라는 신념 아래 책을 통해 백성을 가르치는 교화에 온 힘을 기울였다. 내 취미가 독서인만큼 꼭 필요한 책들을 출판하여 각 교육 기관에 보급하여 교화에 힘썼다. 그래서 모든 정책은 책 출판을 통해 이루어졌다.

열네 번째는 음악 업적으로 조화로운 소리로 백성들을 평화롭게 하도록 했다. 나는 예악 정치를 통해 태평성대를 열었다. 표준음을 정하고 표준 악기를 만드는 것은 천자의 나라 중국의 특권이었으나 나는 우리식 표준음과 표준 악기를 통해 아악을 정비하고 우리식 음악인 신악을 직접 만들었고 정간보라는 악보를 만들어 실제 많은 음악을 만들어 보급하였다.
열다섯 번째는 신명의 음악 업적으로 훈민정음으로 노래를 즐기게 하였다. 나는 왕조의 정당성을 노래한 용비어천가 노래를 훈민정음으로 적어 사대부들이 새 문자를 널리 쓰게 만들었다.

내 스스로 내 업적을 얘기하려니 겸연쩍으나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그 맥락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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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저작자(박재택,김슬옹) 동의로 공유합니다.





세종

훈민정음은 백성들과 함께 /세종

한글 집현전(Editor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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