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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제주 방언

2015년,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제주에 오게 되었다. 육지(제주에서는 제주 이외의 곳을 육지라고 함)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42년을 육지에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제주에서의 생활...

2015년,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제주에 오게 되었다. 육지(제주에서는 제주 이외의 곳을 육지라고 함)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42년을 육지에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제주에서의 생활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한 제주 생활이 어느덧 8년 차에 접어들었고, 지금의 제주는 낯섦보다는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 되었다.

국어사를 전공한 연구자로서 제주에서의 생활은기대감이 컸다. 과거 국어의 모습이 제주 방언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하나의 예를 들면, 제주 방언 ‘성은 집이서 무시거 헴신고?, 성은 집이 와신가?’에서, 전자는 설명의문문으로 ‘-고’, 후자는 판정의문문으로 ‘-가’가 쓰이고 있는데, 문법 범주 중 물음법에서 중세국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문법 범주에서만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음운이나 어휘에서도 나타난다. 

국어사를 연구하는 방법으로는 문헌 자료를 활용하거나, 다른 언어와 비교를 하거나, 방언 자료를 활용하는 방법 등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연구자들은 문헌 자료의 도움을 받아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문헌 연구는 실제 국어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유용한 방법이지만, 문헌 자료의 부족으로 온전한 국어의 모습을 밝힐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어사 자료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방언 자료를 활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글쓴이의 입장에서는 제주에서의 생활이 국어사 연구를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 된 것이다.

처음 이곳에 와서 제주 방언을 접했을 때의 감정은 대학교 신입생 때, 허웅 선생님의 『국어학』을 처음 접할 때의 감정과 비슷하였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교재로 사용하였던 허웅 선생님의 『국어학』의 용어들, ‘월,씨, 이름씨, 임자말, 풀이말, 이름마디 등’ 낯설고 생소하였다. 이러한 낯설고 생소한 느낌을 제주 방언에서 똑같이 느꼈던 것 같다. ‘셋아 (둘째아들), 세우리(부추), 메께라(말이 너무 기가 막힐 때 사용하는 감탄사), ~마씸 또는 ~마씀(서술어 뒤에 덧붙여주는 존대를 나타내는 말), 하쿠다(할 것이다) 등’ 생소했고,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몰랐으며, 실제 대화를 하면 소통이 되지 않았다. 국어가 아닌 외국어 같았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제주 방언’을 ‘제주어’라는 명칭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우리 국어에서 사용하였던 언어와 다른 언어다’라는 인식에서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는 듯하다. 우리나라 방언에는 ‘경기, 전라, 충청, 경상, 강원 등’이 있는데, 이들 방언은 일정 부분 소통이 가능하지만, 제주방언은 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 외국어처럼 들린다.

제주말의 이러한 외국어와 같은 특성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6·25 전쟁 당시 도솔산 전투에서 우리 군의 무전기가 적에게 탈취되어 작전이 노출될 위험이 있었는데, 지휘관의 기지로 제주 방언으로 무전을 하면 적들이 작전을 알아들을 수 없음을 알고, 제주도 출신의 병사들을 통신병으로 두어 제주 방언으로 작전을 무전으로 전달하게 하였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생활하다 보니, 외국어 같은 제주 방언과 관련한 이러한 이야기가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는 공감을 한다.

제주 방언으로 대화하면 지금도 소통에 어려움이 있지만, 어떤 의미인지는 짐작으로 알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전혀 관련이 없었던 제주 방언이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되어 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가게들의 간판에서, 동네에서, 버스정류장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할수 있어서, 낯설지가 않고 익숙하며 친근하기까지 하다. 요즘에는 제주를 여행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제주 방언에 대한 관심 이 높은데, 이는 제주 방언을 직·간접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방영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이러한 관심의 대표적 예인데, 드라마 속의 배우들이 구사한 제주 방언은 정말 낯설고, 어려웠다. 자막으로 의미를 풀이해 주지 않았으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 주다 보니, 배우들이 구사한 제주 방언에 더 집중하게 되고 관심도 높아졌던 것 같다. 또 다른 예로는 제주 방언의 노출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제주 여행을 렌터카로 하지 않고,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버스정류장을 지나게 된다. 제주의 버스정류장은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흥미로운 내용의 문장이 적혀 있다. 제주 방언인데, 여행 온 사람들은 저게 뭐지? 하면서 호기심을 갖는다. 여행을 온 지인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갖게 하는 아이디어는 좋은 것 같다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이러한 정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다. 글쓴이가 한 것도 아닌데 괜히 뿌듯하였다.

방언은 그 지역의 삶과 문화가 담겨 있다. 제주 방언에도 제주 사람들만의 삶과 정서, 문화가 담겨 있다. 방언을 통해 제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 왔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많이 이해하고 있다. 요즘에는 제주 방언이 소멸 위기 단계 4단계라고 하여 보존에 대한 관심이 높다. 방언 조사를 통한 채록, 제주어 사전만들기, 제주어를 활용한 문학 작품 창작, 매체를 통한 홍보, 제주어 말하기 대회 등을 통해 보존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방언이 소멸된다는 것은 그 지역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이기에 제주만의 삶과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보물 같은 우리말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끼고 지킬 필요가 있다.

낯설기만 하였던 제주와 제주 방언이 이제는 낯설지 않은 친근하면서도 포근한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까지는 제주를 여행하는 일반인이었다면, 지금부터는 국어를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제주 방언을 학술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허웅 선생님의 우리말 용어가 처음에는 낯설어 생소하였지만, 지금은 익숙해져 사용하지 않으면 어색해진 것처럼, 제주 방언도 사용하지 않으면 어색하여 다시 자연스럽게 방언을 사용하는 그날까지 무슨 역할이든지 해볼 생각이다.

▲ 제주 버스 정류장에 적혀 있는 제주 방언.





최대희

최대희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ch1637@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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