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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우리의 말과 글

조선어학회의 수난은 1942년 함경도 함흥의 한 여학교 학생의 기차 안 우리말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어린 학생이 우리말로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그 학생의 교사였던 조선어학회의 정태진이 연행되었고 이어 이중화, 장지영, 최현배를 비롯한 33명이...

조선어학회의 수난은 1942년 함경도 함흥의 한 여학교 학생의 기차 안 우리말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어린 학생이 우리말로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그 학생의 교사였던 조선어학회의 정태진이 연행되었고 이어 이중화, 장지영, 최현배를 비롯한 33명이 내란죄 혐의를 받고 투옥되었다.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는 등 민족의 말과 글을 지켜내려 했던 조선어학회의 노력이 민족 운동이었기에 일본 제국주의에게는 내란죄가 된다는 논리였다.

우리의 말과 글 그리고 우리 고유의 문화를 말살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지워냄으로써 일제에 동화 시키려 했던 그들로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무리도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제의 속셈을 꿰뚫은 조선어학회의 선열들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다듬고 정리해 나갔던 것이다.

조선어학회의 수난은 민족정신을 지켜내려는 선열들의 몸부림이었다.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지키기에 힘쓰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모진 고문과 투옥 그리고 이어진 이윤재와 한징 선생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민족의 말과 글을 지키는 것이 조국 광복의 끈을 놓치지 않는 일임을 확신했기에 그들의 그러한 행동들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지켜낸 우리의 말과 글 그리고 민족정신이 살아있었기에 우리 민족의 광복이 가능했다.

조국의 분단과 이에 따르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반도 남쪽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제 선진국의 시민이며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먹을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먹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다. 그 당시 흑백 텔레비전 광고였는데 살찌는 약 광고를 본 생각이 난다. 만화로 만들어진 광고물로 불쌍할 만큼 몸이 빈약한 사람이 알약 하나를 삼킨 후 바로 뚱뚱한 모습으로 바뀌는 영상이었다. 이런 광고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살기 어려웠는지 먹을거리가 얼마큼 귀했는지를 말해준다. 요즘을 사는 젊은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늙은 사람들의 기억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달걀을 싸 올 수 있는 학생은 부잣집 아이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웃어른 집을 방문할 때 달걀 한 꾸러미면 큰 선물이 되었다. 그리도 흔한 달걀이 부자임을 나타내는 징표가 되고 마음을 담은 선물이 될 수 있었다. 

과연 요즘의 젊은이들이 과거를 살았던 세대의 이런 기억들을 실감할 수 있을까?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나라는 누가 봐도 뚜렷한 선진국이며 그들은 선진국 시민으로 자라난 세대이기 때문이다.

한 민족의 말과 글은 그 민족의 정체성과 앞뒷면의 관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고유의 언어와 문자를 지켜낸 민족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켜내게 되고 설혹 국권을 빼앗긴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회복하는 모습을 우리는 수 없이 보아왔다.

우리들의 삶은 이처럼 크게 바뀌었다. 이러한 풍요로움에 취해서인지 아니면 더 이상 빼앗기고 없어질 걱정이 없기 때문인지 요즈음 우리 것에 대한 사랑이 많이 식은 듯하다. 많은 이들에게 있어 우리 말과 우리글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외국의 말과 글을 더 좋아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도심지 거리의 간판, 영화나 텔레비전의 자막 그리고 젊은이들의 겉옷은 정체불명의 말과 글로 도배되어 있다. 

일상의 대화에서 외국어를 최대한 많이 섞어 써야 배운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생각도 있는 듯하다. 심지어 몇몇 지자체에서는 자신들의 동네를 외국어가 우리말처럼 사용될 수 있는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주장을 자랑처럼 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외국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분명히 필요한 것이고 이런 능력이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자랑거리는 우리 것을 지켜나가고 있을 때에만 참된 빛을 발한다. 우리 것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이 없는 상태에서 외국 것을 맹종하는 일은 천박한 사대주의가 아닐까? 우리가 서양의 옷을 입고 서양식 집에 살고 있더라도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사랑만큼은 지켜내야 한다. 왜냐하면 한 민족의 말과 글은 그 민족의 정체성과 앞뒷면의 관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고유의 언어와 문자를 지켜낸 민족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켜내게 되고 설혹 국권을 빼앗긴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회복하는 모습을 우리는 수 없이 보아왔다. 이와 반대로 고유의 말과 글을 잃어 버린 민족은 국권은 물론 민족의 정체성마저도 잃게 된다. 세계화를 빌미로 우리가 정체성을 놓쳐버린다면 언젠가는 우리의 국권이 상실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한류가 확산하고 있다. 한국의 가전제품 수출액보다 한류 콘텐츠의 수출액이 더 많다는 통계도 있다. 이제 우리말, 우리글 그리고 우리 문화는 우리에게 더 큰 풍요로움도 선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물을 안겨주는 우리말과 우리글은 80년 전 조선어학회 선열들이 고통으로 그리고 죽음으로 지켜낸 것임에 분명하다.




이정택

이정택

서울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jtlee@sw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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