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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정음편의 어제(세종) 서문 현대말 번역에 대하여

세종대왕이 직접 저술한 정음편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종 서문과 예의가 이에 해당한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배우는 세종 서문은 정확히 말하면 임금이 직접 지은 글이고 ‘세종’이란 말은 세종 사후의 이름이므로 보통...

세종대왕이 직접 저술한 정음편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종 서문과 예의가 이에 해당한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배우는 세종 서문은 정확히 말하면 임금이 직접 지은 글이고 ‘세종’이란 말은 세종 사후의 이름이므로 보통은 ‘어제 서문’이라고 해야 한다. 엄격히 말하면 서문(머리말)이 아니고 훈민정음을 왜 만들었는지, 그 참뜻은 무엇인지를 밝힌 훈민정음 취지문이다. 

 어제 서문에 대한 한글새소식 610호에 실린 김영환 한글철학연구소장님의 번역이 훈민정음 연구자들의 일반적인 번역과 다른 점이 있어 현대말 번역을 다시 밝히고자 한다. 세종 서문의 한문은 세 문장, 한자로는 54자로 되어 있어 매우 간결하다. 그러나 이렇게 간결한 문장안에 세종이 왜 새 문자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동기, 목표, 취지가 다 담겨 있다.

1)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2) 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3) 予爲° 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 習便於日用耳.
→ 1) ‘國(국)과 中國(중국)을 대비시키고 있으나 사실은 ‘(我)國’(아국)과 ‘中國(중국)’을 대비시키고 있다. 중국은 중화의 나라, 황제가 있는, 세계 중심의 나라로 그 당시 명나라를 가리킨다. 하지만 명나라만을 가리킨다고 이해해선 안 된다. 명나라만을 가리킨다면 우리나라도 ‘조선’이라 불렀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한자와 한문을 써온 오랜 역사 속에서의 중국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조선과 명나라를 대비시키기 않고 ‘국’과 ‘중국’을 대비시킨 이유는 한자와 한문을 오랜 역사 속에서 이야기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과 ‘중국’을 대비시키면서, ‘(중국과) 다르다(-異-)’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말과 중국말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중국과 말소리가 다른데도 문자는 중국 한문을 빌려 쓰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여문자 불상유통(與文字不相流通)’에서 ‘문자’는 한자를 비롯하여 그 이상의 언어단위(한자성구, 한문)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중국어음을 그대로 나타내므로 우리나라 말은 ‘문자(한자/한문)’로는 물이 흐르듯 나타낼 수 없다는 말이다. 말은 다른데 문자는 공통으로 한자라는 사실이 전제된다. 우리말을 적은 한문은 중국식 문장이다. 이렇게 보면 ‘불상유통’이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는데, 말과 글이 유통되지 않는다는 뜻도 있고 한자를 아는 사람과 한자를 모르는 사람 사이에 소통이 되지 않았다는 뜻도 담고 있다. 곧 이 문장은 15세기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말과 글의 모순, 그런 모순으로 인한 문자 생활의 모순을 11자로 극명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어린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2) →‘우민(愚民)’은 지금 해석(직역)으로 보면 ‘어리석은 백성’인데, 그 당시에 한자를 몰라서 책을 읽을 수 없었던 평민 이하의 일반 백성들을 가리킨다. 읽지 않고 배우지 않으면 어리석은 백성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린’을 보통 ‘어리석은’으로 번역하지만 요즘의 ‘어리석은’은 사람을 낮춰 보는 의미가 강하다. 물론 그 당시도 그런 의미가 있지만 세종의 의도는 한자, 한문으로부터 소외받은 사람들에 대한 애민 정신이 반영된 뜻으로 썼다. 따라서 직설적으로 ‘우민’을 ‘어리석은 백성’으로 번역하면 당대의 애민 사상이 반영되지 않는다. 마침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어린’의 뜻을 ‘나이 어리다’외에 ‘어리석다’의 뜻을 수용하고 있으므로 ‘어린’을 그대로 썼다.

‘욕언(欲言)’이 중요한데, 이는 ‘하고 싶은 말’을 의미한다.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이종부득신기정자다의)’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한자를 모르거나 어렵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욕언)’을 표현할 수 없었던 언어생활 모순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모든 백성들이 자신의 감정, 뜻, 하고 싶은 말 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伸其情) 문자를 만들겠다는,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情(정)’은 보통 ‘뜻’을 의미한다. ‘意(의)’ 또한 ‘뜻’을나타내지만 지식과 정보 중심의 뜻을 의미한다. ‘情’은 이러한 뜻을 포함하면서 더 넓게 감정, 의지 등을 포함해서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양반조차도 한문으로는 우리 한국인의 정서를 마음껏 표현할 수 없었다. 한자, 한문을 잘했던 정조 임금조차도 한자로 편지를 쓰다가 ‘뒤죽박죽’이라는 표현은 한글로 썼다. 평소 정조 임금도 ‘뒤죽박죽’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정도이니 한문 편지를 쓰게 되면 ‘錯綜(착종)’과 같이 한문으로 번역해야 하는데 이렇게 표현하면 ‘뒤죽박죽’이 담겨있는 감성, 느낌, 감정이 잘 살지 않는다. 

 말은 소리가 주는 힘도 있다. 즉, 한글을 통해 정서를 표현할 수 있게끔 하려 했던 세종대왕의 뜻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여기서는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자기의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백성들이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을 17자로 극명하게 표현했다.

3) 마지막 문장 첫 글자는 훈민정음 창제 주체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바로 ‘나’ 세종이 만들었음을 천명하고 있다. 이런 창제 주체 문제는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의사소통의 어려움, 뜻을 펼칠 수 없고, 사람답게 살 수 없었던 현실을 가엾게 여겨 새롭게 글자를 만들었다 (‘신제’)는 동기를 통해 그 점을 더 분명히 할 수 있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의 주된 동기는 언어학적 측면에서 봤을 때 말을 한자로 적을 수 없는 언어모순, 사회적 측면에서는 한자 모르는 백성들의 의사소통의 문제, 한자가 교화(세종은 책을 통해 백성을 가르치고 싶어했다)를 갖출 수 없었던 정치적 측면 등이 있다.

‘이습(易° 習)’: 쉽게 배워서 일상생활에서 날마다 사용할 수 있는 글자를 만들고자 했다. 여기서 편하다는 것은, 쉬운 글자이기 때문에 편리하다는 의미도 있고, 쉬운 글자를 편하게 사용하다보니 소통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지식과 정보를 맘껏 나눌 수 있으니 편안한 것이다. 즉, ‘便’에는 편리와 편안이 모두 담긴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세종 서문에는 한자로 인한 언어생활의 모순과 일반 백성들의 고충, 그에 따른 창제 목적, 28자에 담긴 쉬움, 편안함의 가치도 담겨있다. 이상 내용을 종합하여 그림으로 그려 보면 다음과 같다.

▲ 글의 내용을 요약한 그림




김슬옹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훈민정음학 박사

tomul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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