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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문법을 발견한다는 것

일상의 언어들은 언제나 내 안의 문법을 알려주는 좋은 교보재가 된다. “네들이 뭔데?” (x) “네들이 ◯◯를 알아?” (x) “이게 다 네들이 만든 ◯◯◯의 현주소다” (x) 이런 오류는 생각보다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기사문에...

일상의 언어들은 언제나 내 안의 문법을 알려주는 좋은 교보재가 된다.

“네들이 뭔데?” (x)
“네들이 ◯◯를 알아?” (x)
“이게 다 네들이 만든 ◯◯◯의 현주소다” (x)

이런 오류는 생각보다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기사문에서조차 버젓이 등장한다. 오류의 원인을 이해 하려면 이인칭 대명사 ‘네’부터 짚어야 한다. 우리말 단모음 ‘ㅔ’, ‘ㅐ’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서 이를 포함한 단어들의 구분이 어려워지고 있다. 같은 환경에서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은 ‘내’, ‘네’의 구분은 더 어렵다. 우리는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는 방식을 잘안다. ‘네’를 [니]로 발음함으로써 ‘내’와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맞춤법의 입장에서 보면 좀 다르다. 이인칭 대명사 ‘네’를 [니]로 소리 내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정확한 발음과 표기는 ‘네’여야 한다. 그래야 다른 곳에서 쓰이는 ‘네’와 동일한 모양을 갖는다. 같은 의미의 말은 같은 모양으로 적어야 의미가 제대로 전달 된다. ‘네’에 대한 규범 교육의 효과는 제법 잘 작동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효과가 지나쳐 잘못된 표기인 ‘네들(x)’을 양산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네’로부터 온 ‘니’와 ‘니들이 ◯◯을 알아’의 ‘니’는 엄연히 다른 것이어서 이 ‘니’ 를 ‘네’로 고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우리말의 인칭 대명사 ‘나, 너’에는 ‘들’이 결합되지 않아서 ‘나들(x)’이나 ‘너들(x)’은 불가능하다. ‘내, 네’ 역시 마찬가지다. ‘내들(x), 네들(x)’로 복수가 되지는 않는다. ‘나’의 복수형은 ‘우리’이며 ‘너’의 복수 형은 ‘너희’일 뿐이다. ‘우리, 너희’는 다시 ‘들’과 결합하여 ‘우리들’, ‘너희들’이 되기도 한다. ‘니들이 ◯◯ 를 알아?’에서의 ‘니들’은 이 ‘너희들’로부터 온 말이다. 이인칭 대명사의 단수형의 ‘니’는 ‘네’로 수정되어야 하지만, 복수형인 ‘니들’은 ‘너희들’에 관련된 것이니 ‘니’의 모양만 보고 ‘네’로 수정하면 오류가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한글문서(hwp)의 ‘맞춤법 교정’ 기능은 아직까지는 ‘네 들’이 오류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너희’로 부터 온 ‘니’와 그렇지 않은 ‘니’를 구분하지 못하고 ‘니’ 자체를 ‘네’로 자동 교정한다는 의미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문제를 푸는 일은 쉽다. 뒤의 언어 연쇄를 변수로 입력하면 ‘니들’을 ‘네들’로 잘못 수정하는 문제가 해소되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마치 컴퓨터의 방식으로 맞춤법을 바라보는 우리 다. 현재의 교정 프로그램마냥 ‘니’는 오류이니, ‘니’ 는 무조건 ‘네’로 바꾼다는 기계적인 수정은 언어와 맞춤법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오히려 흥미로운 것이 두 번째다. 우리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네’와 ‘니’, ‘니들’, ‘너희들’의 관계에 대해 다양한 궁금증들을 쏟아내고 있다. ‘니 →네’로의 단순 교정 방식에서 벗어나 혼동형을 함께 보이면서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발견한 ‘니들’과 함께 논의된 예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① 너이들, 느이, 느이들, 늬들, 니들 ⇒ 너희들
② 너네, 너네들, 느네, 느네들, 니네들

언중(言衆)이 보여주는 ①의 예들은 ‘너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니’로 변화하게 되었는가를 암시하고 있다. ‘너희’라는 단어가 모음과 모음 사이의 ‘ㅎ’ 이 탈락하고 다양한 모음 변화를 거쳐 ‘니’로 변화 하는 과정이 반영된 것이다. 우리말에서 모음과 모음 사이의 ‘ㅎ’이 탈락하는 일이나 ‘너이~느이~늬~ 니’들 사이의 모음 변화는 우리 언어 변화에서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①은 복수형 ‘너희들>니 들’에 나타난 ‘니’가 ‘네’에서 보았던 ‘니’와 동일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들이 된다.

언중의 말이 귀중한 자료라는 점은 ②에도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네’이다. 이 ‘-네’는 앞 말을 복수로 만드는 말이다. ‘너’에 ‘-네’가 붙어서 복수형을 만들던 옛말의 질서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네’가 붙어 복수형이 된 말은 ‘얘네, 걔네, 쟤네’ 등으로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것들이다. ①, ② 의 예에서 정작 놀라야 할 점은 이 어휘 목록들이 1990년대에 언어학자들이 서울 및 지역 방언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인칭 복수형의 실현 양상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안에 질서가 있고 그것이 이 질서를 찾는 학자들의 성과물들과 일치한다는 점이 포착되는 지점이다.

언어는 끊임없이 변하고 그 변화를 이끄는 것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안에 변화를 이끄는 원리가 담겼다는 말이다. 언어 정책자들은 우리 안의 원리를 포착하여 맞춤법에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맞춤법이 당장의 말 소리 변화를 바로 반영하지는 않는다. 언어는 의미와 소리의 관계로 구성된 것이고, 이 관계 변화는 말소리 변화보다 늦을 수밖에 없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인칭 대명사 복수형을 ‘니들’이라 말한다 하여도 우리는 이를 여전히 ‘너희들’이라고 표기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같은 의미를 가진 말은 같 은 모양으로 적어야 의미가 통한다는 원리가 반영되는 것이다.

맞춤법은 낱낱의 항목 자체로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진정 살아있는 말은 지금 우리가 다양한 현장에서 하는 말이다. 거기에 우리말의 문법이 담겨 있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언어 규범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우리 안의 어떤 문법적 질서가 담겨 있는지를 궁금해 하는 일이다. 거꾸로 표준어나 맞춤법에 반영된 원리를 궁금해 하고 다시 내 안의 말의 원리를 탐색하려는 기회로 삼는 것 역시 우리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귀한 과정이 되는 것이다.





김남미

김남미

홍익대 교양과 교수

leedau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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