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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서 배우는 우리 말글 ―아부다비 한글학교 이야기―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다. 남편이 주재원으로 파견을 나오면서 아이와 함께 일시 거주 중이다. 나는 한국에서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했었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으로 호찌...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다. 남편이 주재원으로 파견을 나오면서 아이와 함께 일시 거주 중이다. 나는 한국에서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했었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으로 호찌민시에 파견되어 베트남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을 살려 현재 아부다비 한글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아부다비 한글학교 학생들의 수업 모습

아랍에미리트에는 1만여 명의 한국 교민이 있으며, 아부다비에는 그중 절반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아부다비 한글학교는 이들 교민 자녀를 위해 2010년 문을 열었다. 설립 당시 한 학생의 에미라티 친구 어머니가 현지 여자고등학교 교장이었다는 인연으로, 감사하게도 토요일마다 학교 건물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적은 인원으로 시작된 학교는 나날이 발전해, 2024년 현재 유치반부터 중등반까지 200여 명의 학생이 우리말과 글, 역사와 문화를 배우러 온다.

아랍에미리트는 공용어로 영어와 아랍어를 택하고 있는 나라다. 평일에는 이 두 언어를 공부하고, 주말에 한글학교 오는 학생들은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 문자인지, 한국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몸소 느끼고 열심히 수업에 참여한다. 영어는 대문자와 소문자가 있고, 철자와 발음이 불일치해 각 단어를 외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아랍어는 우리처럼 소리글자를 사용하지만, 문장 내 위치에 따라서 모양이 달라진다. 또한 한글과 반대인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로쓰기를 하기 때문에 읽는 방식도 낯설다. 한글날 행사로 열린 엽서 꾸미기 대회에서 평소 아이들이 느끼는 한글에 대한 고마움을 엿볼 수 있었다.

한글날 엽서 꾸미기 대회 작품. ‘세상의 모든 금은보화를 더한 것보다 값진 한글’이라는 표현과 그림이 참신하다.

현재 내가 맡고 있는 5학년 학생들은 우리 말글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초등반 수업은 국정 국어 교과서로 진행되는데, 이 수준에 못 미치는 아이들이 여럿이다. 특히 이른 나이에 해외에 나온 학생들은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이 힘들다. 그들을 위해 내준 특별 과제는 동화책 하루 한 장 따라 쓰기. 승마에 관심이 많은 한 학생에게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말박사 고장수』(곽옥미 저, 시공주니어) 따라 쓰기를 숙제로 내주었는데, 한글 연습도 되면서 우리 문화도 배울 수 있어 좋은 방법이었다. 한글 익히기에는 흥미에 맞는 독서만큼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

아부다비에는 규모가 큰 어린이 도서관이 있고, 여기서 중국어, 프랑스어 등으로 된 책은 눈에 띄지만, 한글책은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한국문화원 도서관에서는 한글책을 읽을 수 있으나, 시내와 멀리 떨어진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한글학교 도서관은 그래서 소중한 공간이다. 비록 그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분야의 좋은 책들로 구성되어 있고, 학교에 올 때마다 들를 수 있어 편하다. 학생들은 매주 3권의 책을 빌릴 수 있으며, 독후감을 열심히 작성한 학생에게는 독서왕 상장도 수여한다. 이렇게 우리글을 가까이할 수 있는 한글학교는 해외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 더없이 귀한 곳이다.

언어에는 그 사용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다. 따라서 언어교육은 역사 및 문화교육과 함께 가야 한다. 한글학교에서도 기념일마다 우리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계기교육이 이루어진다. 삼일절에는 태극기와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에 대해 배우고, 한글날에는 훈민정음 반포와 조선어학회에 대해 알아본다. 그리고 추석에는 왜 송편이 반달 모양인지를 살펴보며 진짜 송편을 먹는다. 얼마 전 설날에는 세배하는 방법을 익혀 선생님들에게 세배한 후, 세뱃돈을 받는 행사를 가졌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서 높임법의 발달은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에서 비롯되었음을 몸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많은 것을 대체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핵심 역량이 바로 창의성이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으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마틴 스콜세지의 말을 인용했다. 이 문장은 언어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우리 고유의 말과 글을 제대로 익힌 학생들은, 이를 토대로 다른 언어를 공부하며 창의적인 사고능력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글학교는 우리의 다음 세대가 너른 세상에서 자신들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어주고 있다.

바쁘게 평일을 보내고 주말이면 편히 쉬고 싶겠지만, 많은 학생이 기쁜 마음으로 한글학교에 온다. 한국 친구들과 만나 우리말로 마음껏 이야기하면서, 타지에서 생활하며 쌓이는 스트레스도 풀리는 듯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뜻이 맞는 동료들을 만나고, 성실한 학생들과 함께 하면서, 아부다비의 생활이 더욱 보람 있고 즐거워졌다. 한글학교는 아랍에미리트뿐 아니라 전 세계 114개국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는 수업이 진행 중일 것이다. 우리 말글을 우리 아이들에게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분들께 응원을 보낸다.



김도연

김도연

아부다비 한글학교 교사

bomnadri04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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