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Nav

에디터정보

Haangle Latest

latest

이야기꾼의 이야기에 빠지면,

거리의 책 읽어주는 플랫폼, '전기수(Jeongisoo)' 1790년 8월 10일(음력, 정조 14년), 서울 종로에 있는 한 담배 가게 앞에 모인 사람들. 사람들의 시선은 당시 최고 인기 있었던 임경업 장군을 영웅화한 소설을 들...

거리의 책 읽어주는 플랫폼, '전기수(Jeongisoo)'


1790년 8월 10일(음력, 정조 14년), 서울 종로에 있는 한 담배 가게 앞에 모인 사람들. 사람들의 시선은 당시 최고 인기 있었던 임경업 장군을 영웅화한 소설을 들려주면서 연기를 곁들여 실감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야기꾼을 향해 있었다.

그때, 이야기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간 한 사람이 있었으니,

“네 이놈, 네가 김자점이구나!”

간신 김자점이 임경업 장군에게 누명을 씌우는 대목에 이르자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고 절초검(담배 써는 칼)을 들고 앞으로 달려나가 전기수(Jeongisoo)에게 고함을 쳤다.

그러고는 담배 써는 칼을 들고 앞에 달려들어 책 읽는 사람을 쳐 그 자리에서 죽게 하였다.

<정조실록 (정조14년)>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소설을 들려주다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 조선 시대 이야기꾼인 전기수(Jeongisoo)와 관련한 이야기이자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이야기를 좋아하였고 이야기에 몰입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18~19세기의 한국(조선) 사회는 정치적 안정으로 사회에 변화와 성장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읽을 수 있도록 한글을 창제(1443년)했지만 지배층은 한글은 여자가 사용하는 글자라고 낮춰보며 여전히 주류 문자로서는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 한글소설이나 외국 작품을 한글로 번역한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여자는 물론 평민들도 문화를 향유하기 시작했고 대중적으로 소설의 보급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책이 귀하던 때 소설의 보급은 책을 대여하는 '세책점'을 통해 활성화 되기도 했지만 '세책점'은 서울에만 있었고 대여료를 내야 했기 때문에 돈이 없거나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은 소설 속 이야기에 대한 갈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 전기수의 등장이었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도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항상 극적인 장면에서 끝나 다음 회에 시청자들을 화면 앞에 불러들이는 것처럼, 당시의 이야기꾼인 전기수도 이야기를 풀어가며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여 궁금증을 한껏 유발 시킨 후에는 이야기를 멈춘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하거나 절박하게 들어야 할 장면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책을 덮거나 이야기를 멈추고 침묵한 것.

침묵의 의미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으면 돈을 내라는 것이다.
애가 타고 이야기가 궁금함을 참다 못한 사람들은 돈을 던져 주었고 그런 다음에야 전기수는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전기수는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거리의 책 '읽어주는 플랫폼’으로 대중문화를 이끈 지식 전달자이자 재능 있는 연예인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들은 그를 통해 지식을 습득했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 풍자와 해학을 통해 정서를 순화하였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웃지 못 할 사건이 시사하듯 전기수가 이야기 전달자로서 대중의 몰입을 높이는데 얼마나 충실했는지, 대중은 이야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었던 시대. 책 읽는 기쁨을 전해준 전기수 덕분에 한글 소설은 더욱 발달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다양한 문학을 즐길 수 있었다.

한글 발달 밖 세계사, 이 즈음 세계는..

한글이(창제되고 300년이 지나서야) 대중문화와 함께 꽃을 피우던 때, 세계는 산업혁명 후 사회 경제적 변화와 기술의 혁신으로 경제발전과 사회 구조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야기꾼이 유명을 달리했던 1790년, 미국은 대영제국으로부터 13개 주로 독립하고 첫 상업용 증기기관 제품을 출시한 해이며,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 후 이듬해 루이 16세에 의해 입헌 군주제가 도입된 해이다. 


#한글소설 #이야기꾼 #전기수(Jeongisoo) #한글 발달


차민아

차민아 / Cha Mina

한글닷컴(Haangle.com) 대표, 연구위원

댓글 없음

Latest Articles

LANGU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