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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종(18) 세종대왕과 소쉬르

나는 학자다. 학자는 논문을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사람이다. 학문을 주업으로 삼는 이가 학자라면 학문의 성과는 논문을 통해 드러나고 소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선호하는 직업이 교수이지만, 교수라도 논문을 쓰지 않으면 교수...


나는 학자다. 학자는 논문을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사람이다. 학문을 주업으로 삼는 이가 학자라면 학문의 성과는 논문을 통해 드러나고 소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선호하는 직업이 교수이지만, 교수라도 논문을 쓰지 않으면 교수일지언정 학자는 아니다. 나는 그동안 석사과정에 입학한 1989년 이래 30여 년간 135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어찌어찌 하다 보니 박사 학위만 세 개를 받았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세종문화상 학술 분야 대통령상을 받는 영예를 누리었다. 상도 기쁘지만 재야 학자로서 그동안 힘써 연구한 성과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국가가 인정해 주니 더욱 보람이 있다. 1977년 철도고 1학년 시절 세종대왕의 꿈을 이루겠다고 한자식 이름(용성)을 토박이말 이름(슬옹)으로 바꾸고 그 기쁨을 일기(1978.1.16.)에 적은 지 43년 만에 받은, 세종대왕 이름이 들어간 상이라 그 의미를 자축해 본다.

그동안 쓴 모든 논문이 자식같이 소중하지만 그래도 가장 아끼는 논문을 한 편 뽑으라면, 2018년에 발표한 “세종과 소쉬르의 통합언어학적 비교 연구. ≪사회언어학≫ 16권 1호. 1-23쪽. 한국사회언어학회.”로 ≪세종대왕과 훈민정음학≫(지식산업사. 404~439쪽)에도 실려 있다. 익명의 세 명의 심사위원들께서도 만 점에 가까운 평가를 해 주었다.

이 논문을 쓰게 된 계기는 소쉬르 언어학을 10년 이상 공부한 탓도 있지만, 어느 학회에선가 세종에 대한 나의 찬사에 대해 누군가가 세종을 국수주의식으로 미화하지 말라는 조언(?)을 듣고 나서였다. 나는 미화하거나 과장한 적이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지만 그런 의심을 풀어주지 못한 내 책임도 큰 것만큼은 틀림이 없었다. 세종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보편적인, 세계인들이 두루 공감할 수 있는 평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림] 소쉬르의 랑그와 파롤. ⓒ김슬옹

그렇다면 세종을 정치가가 아니라 학자로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와 견준다면 좀 더 보편적인 평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들었다. 바로 그런 학자가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였다. 그의 제자들이 1916년에 펴낸 ≪일반 언어학 강의≫는 언어학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인문학에서 인용되는 명저였다. 그러니까 소쉬르는 언어학 분야뿐만 아니라 철학, 문화 등 거의 모든 인문학과 인접 학문 분야에서 두루 근대 학문과 탈근대 학문의 시조처럼 추앙받는 이였다.

≪일반 언어학 강의≫는 근대 언어학을 연 고전으로서, 거기다가 탈근대 학문의 고전으로까지 평가되고 인용되는 명저이다. 1982년 대학을 입학해서 언어학을 하겠다고 하니까 선배들이 제일 먼저 읽게 한 책이기도 하다. 대학원 때는 영어판과 프랑스판도 함께 읽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종대왕이 1446년에 대표 저술한 ≪훈민정음≫ 해례본에 소쉬르의 언어 연구 방법론이 녹아 있었다. 소쉬르보다 470년 앞서 이룬 성과였다.

▲ 세종대왕과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 © 구글이미지 검색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강의≫ 핵심은 언어의 체계성과 동일성ㆍ보편성 중심의 ‘랑그’와 차이와 다양성 중심의 ‘파롤’을 설정하고 언어의 이러한 양면성을 객관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그런데 세종의 훈민정음 연구 또한 소리의 체계성(랑그)와 다양성(파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물이다. 중국말과 다른 우리말 특성에 주목하고 거기다가 변방의 아이들 말까지도 분석해 그 모든 다양한 소리를, 서로 다른 생각과 느낌을 맘껏 적을 수 있는 과학적이면서 생태적인 문자를 만들었다. 거기다가 세종은 소쉬르가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언어사용의 주체 문제를 정면으로 내세워 누구나 평등하게 문자생활이 가능한 그런 세계를 열었다.

물론 세종 이도와 소쉬르를 비교한 것은 누가 더 훌륭한가를 따지려고 한 것은 아니다. 소쉬르보다 470년이나 앞서 이룬 세종의 성과와 그런 성과를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제대로 알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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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세종신문>에 필자가 연재했던 것입니다.





김슬옹

김슬옹

한글닷컴(Haangle.com) 연구소장/편집위원, 세종국어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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