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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 선생의 음성 연구

고루 선생은 29세가 되던 1922년 4월 베를린대학 철학부에 입학하여 경제학을 전공하고 1927년 5월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고루 선생의 본격적인 음성연구는 박사학위 취득 후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1928년 1월부터 4개월간 베를린대학 ...

고루 선생은 29세가 되던 1922년 4월 베를린대학 철학부에 입학하여 경제학을 전공하고 1927년 5월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고루 선생의 본격적인 음성연구는 박사학위 취득 후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1928년 1월부터 4개월간 베를린대학 음성학실험실에서 위틀로 교수의 지도를 받아 우리말의 발음에 관해 실험을 했고, 1928년 5월 한 달간 파리대학 음성학부에서 슈라메크 박사와 함께 하루 6시간씩 카이모그래프와 자신의 인공구개를 가지고 우리말의 발음에 관한 실험을 했다. 고루 선생은 1928년 귀국길에 오르기 전인 5월 말이나 6월 초 런던으로 가서 대니얼 존스 교수로부터 한글 어음에 대한 논평을 들었다고 한다.

고루 선생은 1928년 파리대학에서 연구하면서 얻은 자신의 인공구개와 카이모그래프 실험 자료를 토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실험음성학 저서인 『실험도 해 조선어음성학』을 저술해 1947년 아문각에서 출간했다.

지난 2011년 10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파리 소르본 대학 ‘언어 아카이브(Archives de la Parole)’에 보관되어 있는 음성자료들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 누리집에 공개했는데, 여기에 1928년 5월 15일 녹음된 고루 선생의 육성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언어 아카이브’는 프랑스의 언어학자이자 역사학자인 페르디낭 브뤼노(Ferdinand Brunot)가 각국의 언어와 방언, 민담, 설화, 노래 등을 보존하기 위해 1911년부터 1938년까지 녹음한 음성자료를 담고 있는데, 현재 600,000여 점의 방대한 음성자료가 있다고 한다. 

고루 선생의 육성 자료는 레코드 두 장에 담겨 있는데, 그중 한 장의 앞면에는 ‘조선어의 문자와 말소리(Alphabet et sons du Coréen)’로, 뒷면에는 ‘조선어의 말소리(Sons du Coréen)’로 기록되어 있고, 다른 한 장의 앞면에는 ‘사람이 신이다: 천도교리 발췌문(L’homme est dieu: extrait de Thyon-to-Kyo-ri)’로 기록되어 있다.

고루 선생의 육성 녹음자료는 녹음 상태가 매우좋다. 고루 선생의 음성도 명료하고 발음도 명료하다. 매우 좋은 20세기 초반 서부 경남 방언 자료이다. 현재 알려진 해방 이전의 녹음자료는 방송자료 몇 점과 교육용 녹음자료 몇 점밖에 없을 정도로 희귀하다. 그런데 고루 선생의 녹음자료를 들어보면 모음 /ㅔ/와 /ㅐ/, /ㅡ/와 /ㅓ/가 명확하게 구별되는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경남 방언과는 차이가 난다.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녹음자료로 판단된다.

고루 선생은 1948년 4월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참석차 평양에 갔다가 잔류한 이후 북한에서 활동하였다. 고루 선생은 북한에서 활동하던 기간에 조(調) 연구에 몰두하였다.

1957년 「조선말의 력점 연구」, 1960년에는 「조선말의 악센트」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악센트(력점)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1963년에 「북청 방언의 조(調)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1966년에 『조선어 조 연구』라는 단행본을 저술하였다.

고루 선생은 1957년 「조선말의 력점 연구」에서 사람들이 말을 할 때 발음하는 단어의 음절들 중 어떤 한 개 음절이 특출할 수 있는데, 이 특출한 현상을 ‘력점(ударение, akzent)’이라 했다. 유럽의 언어들은 강세 악센트를 가지고 있으나 ‘조선말’의 표준 력점은 고저 관계와 장단 관계가 대등한 비중으로 관여하며, 강약 관계는 부차적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고루 선생은 ‘조선말’이 고저악센트어인지 성조언어인지는 정의하지 않고 3단계 고저가 있고, 장모음과 단모음이 있다는 점을 기술했다. 이 정의를 토대로 1음절어, 2음절어, 3음절어, 다음절어의 력점 형태들을 분류하고 기술했으며, 문장의 력점과 어조도 기술했다. 그리고 조선말 력점이 자유 력점이기 때문에 력점의 변화 법칙에서 규칙적인 법칙성이 작용하지 않지만 일부 단어에서 어·음절 변화 현상과 문법적 변화 현상을 찾아 볼 수 있다고 보고, 이 력점 변화 법칙도 기술했다.

고루 선생의 초기 력점(악센트) 연구는 후에 조(調)의 연구로 더 체계화되었다. 고루 선생은 「북청 방언의 조(調) 연구」와 『조선어 조 연구』에서 조(調)를 ‘음조’와 ‘어조’로 나누었다. ‘음조’는 선행 연구에서 기술된 악센트와 력점에 대응하는 용어로 북청 방언과 공통어에서 ‘성조’ 내지 ‘고저악센트’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어조’는 현대 음성학 용어로는 ‘억양’을 의미한다. 고루 선생은 음조와 어조를 저조, 평조, 고조 세 단계의 고저로 기술했으며, 단어의 음절수에 따른 음조 패턴을 분류하고 기술했다. 또한 절, 구, 장, 편에 얹힌 어조를 각 음절별로 숫자와 장단, 세기 기호를 이용해 기술했다.

고루 선생은 『조선어 조 연구』에서 북청 방언에는 공통어의 2계단과 3계단의 고저와 유사한 음조가 있고, 공통조의 1계단 고저에 대응하는 음조는 없다고 기술했다. 공통어와 북청 방언에는 모두 장모음과 단모음이 있는데, 공통어의 단음절어에서는 장모음이 1계단과 2계단 음조와만 결합해서 나타나고, 3계단 음조는 단모음과만 결합한다고 기술했다. 반면에 북청 방언은 2계단과 3계단 음조가 각각 짧은 소리(2, 3으로 표기), 긴 소리(으로 표기), 끝 숙이는 소리()와 결합해 실제로는 여섯 가지 음조가 나타난다고 기술했다.

고루 선생은 북청 방언 어조와 공통조의 어조의 차이에 관해서도 기술했는데, 북청 방언 어조는 어조의 음역이 아주 넓고, 한 문장에서 고저, 장단, 강약의 차이가 많아서 강하고 높고 긴 것이 동시에 나오며, 서술 문장의 끝은 아주 낮고 짧게 실현된다고 했다. 반면에 공통조의 어조는 음역이 비교적 좁고 굴곡이 적으며, 문장에서 처음에는 굴곡이 있고 중간에는 그냥 평탄하게 나가다가 끝에서 굴곡이 심하다고 기술했다.

고루 선생은 ‘조선말의 조 연구’에서 카이모그래프(kimograph)를 이용해 공통어와 북청 방언의 조(調)에 대한 학설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제시된 실험 결과가 본문에 기술된 음조와 일치하지 않는 자료들이 있어 장래에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어 고루 선생의 어조 연구가 온전하게 평가되길 기대한다.





이호영

이호영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

hyle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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