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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와 활발한 우리말 찾기 운동의 필요성

마스크를 쓰자, 통금 시간을 지키자, 무리 짓지 말자 등 온갖 구호가 거리마다 넘쳐 났었다. 플랫폼이나 버스정류장마다 벽보와 현수막이 걸렸고 전광판에선 연일 코로나 안전 수칙을 방송했다. 텔레비전 등 방송 매체 뉴스는 확진자 수를 실시간으로 파...

마스크를 쓰자, 통금 시간을 지키자, 무리 짓지 말자 등 온갖 구호가 거리마다 넘쳐 났었다. 플랫폼이나 버스정류장마다 벽보와 현수막이 걸렸고 전광판에선 연일 코로나 안전 수칙을 방송했다. 텔레비전 등 방송 매체 뉴스는 확진자 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코로나 현황을 따라가기에 바빴다. 지 난 3년간의 코로나 풍경을 떠올리며 우리말 살리기와 우리말 지키기가 얼마나 유명무실했는지 깨달았다.
    
순우리말이나 옛말의 가치를 대하는 대중의 태도가 학계와 실생활에서 늘 어긋났다. 학문 영역에서 우리말에 관한 소중함은 언제나 담론을 형성했으나 국민과 국가의 차원에선 공공연하게 외면 받았다. 당장 각 버스정류장이나 전철역의 명칭만 보아도 이 를 잘 알 수 있다. 외국말이 쉽고 예쁘고 편안한 우 리말을 공공의 장에서 떠밀고 있었다. 이러한 우리 말 양상이 이제 너무도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동영상 공유 서비스(유튜브)에서 재밌는 콘텐츠를 한 편 봤는데 우리말 지키기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되새기는 계기였다.

 
전 국민이 거의 사용 중인 누리소통망(카카오톡)으로 이제 금융거래까지도 할 수 있게 됐다. 누리소 통망은 대중의 일상 깊은 곳까지 침투해 있다. 이러 한 누리소통망 열린대화방(오픈채팅방)을 매체로 흥 미로운 실험이 열렸다. 이른바 엠제트 세대 무리에 5·60대 중년층 참여자를 입장시켜 대화만으로도 서로 연령을 알아볼 수 있는지 실험한 것이다. 실험의 본 취지와 별개로 여기에서 우리말 지키기의 민 낯과 마주쳤다. 채팅방의 중년 참여자가 실험의 취지에 맞게 엠제트 세대의 말투와 표현을 흉내 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방가방가’, ‘하이루’, ‘뿜뿜’과 같은 표현이 대화의 8할이었다. 또한 이러한 표현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참여 자의 미션 성패가 좌우된다. 이는 소위 엠제트 세대 의 언어 습관이 온통 신조어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요즘 학생의 어휘 사용량이 무척 줄었다는 사실을 종종 목격한다. 젊은층의 대화나 소통의 장을 보면 온통 외래어와 신조어투성이다. 신조어를 무조건 나쁘게만 볼 게 아니다. 신조어란 최초의 순우리 말이 그랬듯 아직 표준어로 등록되지 않은 모국어다. 그러나 신조어의 용례를 살피면 신조어가 명확 한 문장 형성을 저해하고 있었다. “여미새, 남미새, 가심비, 렬루, 돼지런하다, 자낳괴, 슬세권, 좋댓구 알, 킹리적갓심, 쩝쩝박사, 설참, 고인물” 등만 봐도 이를 금방 알 수 있다. ‘돼지런하다’는 먹을 때 부지런한 사람을 일컫는다.

 
돼지와 영어 ‘run’을 합성하고, ‘부지런’을 ‘돼지런’ 으로 대체한 언어유희로 보인다. ‘렬루’는 영어 ‘real’ 을 우리말로 발음한 듯한데, 혀를 굴려 ‘리얼’을 ‘렬’로 줄이고 ‘루’를 덧붙인 것이다. 여기서 루는 ‘로’이 며, ‘리얼로?’를 익살스럽게 꾸민 말이다. ‘킹리적갓 심’도 일상에서 흔하게 접한 신조어로 합리적 의심이란 뜻이다. 이처럼 외래어 혹은 외국말과 우리말이 만나 재기발랄한 표현이 태어나고 있었다. 그런 데도 어딘가 장난스러워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여미새’는 자세히 살피면 거북한 비속어 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여미새는 여자에 미친 남자의 줄임말로 끝말 ‘새’는 ‘새끼’의 앞 글자다. 언어는 당대의 세태와 풍속을 고스란히 담는다. 거기서 당대인의 삶과 사유가 흘러나온다. 

요즘 신조어 세대를 지켜보며 고운 순우리말의 향수를 크게 느낀다. 순우리말도 당대에는 기존 언어 풍토에 서 신조어였을 텐데 전혀 장난스럽지 않다. 도리어 아름답고 깊은 격조를 지니고 있다. ‘간조롱하다’는 가지런하다는 뜻으로 어감이 무척 귀엽고 발랄하다. 

‘그루잠’은 잠시 깨어서 이내 다시 빠져든 잠, ‘꽃 잠’은 신혼부부의 행복한 첫날밤을 가리킨다. 첫날 밤이 꽃잠이라니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가. 아무 탈 없이 잘 자란다는 ‘도담도담’도 너무나 우아하고 예쁘다. ‘다솜’은 애틋한 사랑이란 뜻으로 널리 알려 진 순우리말 가운데 하나다. 이외에도 나비잠, 나르 샤, 그린나래, 그린비, 너울, 다소니, 다님길, 달보드레하다. 별찌, 모꼬지, 비나리, 안다미로, 예그리나, 윤슬 등 예쁜 순우리말이 널렸다.
 
그러나 순우리말의 폐해도 종종 눈에 띈다. 저 중엔 가짜 순우리말이 있을 수도 있다. 본래 뜻을 지우고 새 의미를 덧씌운 예를 더러 발견하기 때문이다. ‘초아’가 대표적 가짜 우리말이다. 초처럼 자신을 태워 세상을 비춘다는 뜻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잘못 된 정보다. 초아는 순우리말이 아니며 오히려 풀의 새싹을 가리킨 한자어다. 그래도 여기엔 순우리말이 지향하는 정신이 담겨 있다. 순우리말의 바탕은 아름다움과 대상을 소중히 다루려는 세심함이다.
    
이처럼 신조어와 순우리말의 정서가 다르게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시대정신의 차이에서 비롯한 것일까? 광장이 위험천만한 사각지대로 변한 시대다. 이러한 시대를 사는 우리 무의식과 일상의 결과물이 바로 현재 모국어의 모습이 아닐까? 어울림 이 아니라 경계 짓기와 심해지는 불투명성이 우리말을 더 사납고 장난스럽게 변질한 게 아닐지 모르겠다. 

타인을 경계하는 시선과 동시에 냉엄한 시대를 이기려는 해학이 지금의 신조어를 탄생시킨 게 아닐 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건 순우리말과 신조어 모두 전유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신조어는 세대 전유를, 순우리말은 시대적 전유를 내포한다. 순우리 말은 명맥이 끊겨 겨우겨우 이어져 오고 있으며 신조어 또한 언제가 옛말로 사라질 것이다.

말은 사람이다. 사람이 말이다. 그렇기에 모국어 는 말과 사람이 사는 삶의 현장이며 넓은 땅이자 큰 그릇이다. 시대가 흘러 세대마다 각 그릇에 담겼던 지난 말과 사람의 양태를 살피자면 순우리말 과 신조어를 따로 볼 게 아니라 한 몸의 성장기로 바라보아야 한다. 역사란 지난 시대와 대화라고 했 듯이, 이제 신조어와 순우리말의 소통이 필요한 때 다. 소통으로 우리말을 살리고 언젠가 사라질지 모를 신조어의 장점을 어서 찾아 서로 공생해야 한다. 이는 언어와 인간의 공생이며, 사람 사이의 공 생이다. 어느 때보다 우리말의 자취를 찾는 운동이 시급하다.





김선주

김선주

문학평론가

angelaks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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