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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가 왜 이러나

2022년 부산시는 영어 상용 도시를 선언했다. 영어 상용 도시를 위해 ‘상용 공문서의 영어 병기’, ‘도로 표지판과 공공시설물 영문 표기화’, ‘영어 능통 공무원 채용 확대’, ‘외국인학교 유치’, ‘권역별 글로벌 빌리지(영어마을) 등 거점교...


2022년 부산시는 영어 상용 도시를 선언했다. 영어 상용 도시를 위해 ‘상용 공문서의 영어 병기’, ‘도로 표지판과 공공시설물 영문 표기화’, ‘영어 능통 공무원 채용 확대’, ‘외국인학교 유치’, ‘권역별 글로벌 빌리지(영어마을) 등 거점교육센터 조성’ 추진 방안 등을 내놨다. 그러더니 더 나아가 부산시는 법정동 이름을 말도 안 되는 잡탕 외국어로 쓰려고 한다. 부산을 홍콩처럼 영미에 도시를 빌려주자는 뜻인가. 부산에 과연 외국인이 얼마나 살고 있으며 영어 사용자가 얼마나 된다고 영어 동 이름을 쓰려고 하는가. 대한민국 공공기관 도로표지판에 영어를 병기하고 공문서에 영어를 병기하려고 하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2000년 들어서면서 국내 영어 공용화 정책을 시도한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2004년 안산 영어마을과 2003년에 서울시의 영어 공용화 정책, 파주 영어마을을 비롯한 여러 영어마을이 모두 실패했다. 지금 인천도 무슨 얼토당토 아닌 영어 통용 도시를 추진한다고 한다. 당장 멈추어야 한다.

지난해 부산시는 낙동강 하구의 강서구에 ‘에코델타시티’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 있다. 2012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오는 2028년까지 7만여 명이 입주하는 도시라고 한다. 우선 에코델타시티, 뉴욕시티처럼 무슨 미국의 한 도시 이름 같지 않은가. 그런데 더 놀랄 일은 지난해 부산시 지명위원회에서 강동동·명지1동·대저2동을 합친 새로운 법정동 이름을 ‘에코델타동’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강서구 구청 관계자는 “이제 남은 건 구의회 의견 수렴과 행정안전부 타당성 검토·승인이다. 이후 조례를 통해 법정동 설치를 공표하게 된다.”고 한다. 행안부 승인만 남았다고 하니 이 땅에도 머잖아 미국 동 하나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행안부와 국토교통부의 ‘공공데이터포털’에 올린 전국의 법정동 이름에 외국어로 된 지역은 지금까지는 한 곳도 없다. 따라서 ‘에코델타동’이 행안부 승인까지 이루어진다면 전국에서 처음으로 영어로 된 법정동 이름이 생기게 되는 셈이다. 이러자 한글학회· 한글문화연대·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75곳)은 최근 성명을 내고 반대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강서구 여야 국회의원 5명 모두 새로운 법정동 신설은 긍정이나 100% 외국어로만 이루어진 동 이름 전환을 반대하고 있다. 시의원들도 반대한다고 하니 기다려 볼 일이다. 지난 2010년 대전 유성구에서도 ‘관평테크노동’이란 외국어가 섞인 동 이름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많은 단체와 시민들의 반대로 석 달 만에 이를 폐기하고 관평동으로 했다고 한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

이제는 외국에 나라일도 팔아먹더니 아파트도 팔아먹고 조상의 나라 땅까지 팔아먹는 것 같다. 팔아먹다니 도대체 무슨 그런 심한 말을 하는가 싶기도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말과 글을 파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과 다름 아니다. 남의 말과 글에 정신이 팔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공기관 이름과 사업이름은 온통 외국어 투성이고 뜻도 모르고 국적도 없는 해괴한 외국어가 우리가 사는 아파트 벽마다 대문짝만하게 난무하더니 이제는 내나라 땅이름인 주소에까지 외국어를 쓰려고 하니 이 어찌 기가 막힌 일이 아닌가.

지난해 서울시에서 공동주택 명칭 개선안을 내었다고 하니 늦었지만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아파트 이름이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25자), ‘항동 중흥에스클래스 베르데카운티’(15자)이라고 하니 말이 되는 것인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외국어 아파트 이름이 전국에 수두룩하다. 이름은 부르기 쉽고 간단해야 하며 뜻이 담겨야 한다. 이름 부르다가 숨넘어갈 지경이다.

땅이름(지명)에는 예로부터 그 지역의 오랜 문화나 삶, 역사, 전통을 담고 있다. 따라서 땅이름은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자산이기 때문에 결코 함부로 지어서는 안 된다. 땅은 우리 조상의 뿌리이고 삶터이며 겨레의 혼이다. 수천 년 동안 사용해 왔던 우리 고유한 땅이름이 이제 거의 숨통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일찍이 우리가 중국의 영향권에 살면서 고유한 수많은 땅이름들이 한자어로 한번 바뀌었다가 또다시 나라 잃은 시대를 겪으면서 일본식 한자어로 사라졌다. 나라 잃은 시대 일본은 조선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려고 했다. 민족말살정책의 하나인 이른바 창씨개명이었다. 그들은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면 우리를 그들 민족인 황국신민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일찍이 알았던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그들은 남의 나라 땅이름까지도 그들 마음대로 바꾸었다. 우리 겨레의 문화와 혼을 말살하려했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써왔던 아름다운 토박이 땅이름들이 뜻도 모르고 뜻도 없는 한자어로 바뀐 곳이 전국에 수없이 많다.

법정동 이름은 공공기관 이름이다. 따라서 국어기본법에 따라야 하니 외래어로 쓰면 안 된다. 국어기본법 제14조 ‘공공기관등은 공문서등을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로 돼 있다. ‘공문서등’ 이란 말에는 기관 이름과 땅이름도 해당된다. 따라서 적어도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이름이나 법으로 정해진 공공언어들은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로 써야 한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턴가 외국어를 고급스러운 상류 언어로 생각하고 우리말은 시대 뒤떨어지고 촌스러운 언어로 생각해 왔다. 한자와 한문을 부려 쓴 사람들이 오랫동안 상류 지배 계층에 군림한 것처럼 외국어를 부려 쓰는 사람들이 상류 고급문화를 누리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정보를 독점하고 선민의식이 가득 찬 이른바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이다. 이제 우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그처럼 이제 우리말과 글로 우리 문화를 당당하게 세계에 알려 자랑할 때가 됐다. 더 이상 나라와 겨레를 남의 말에 팔아먹는 열등 민족, 부끄러운 나라는 되지 말아야 한다. 세계가 우리 말글과 문화를 배우려고 야단인데 우리 스스로 우리 것을 업신여기고 있다. 우리 말글을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부산시는 지금 당장 말도 안 되는 외국어 동 이름인 ‘에코델타동’으로 바꾸려는 계획을 멈추길 바란다.



임지룡

임규홍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t010365670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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