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나비(작가: 호진) 구찌가 왜 광화문을 배경으로 광고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광화문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서울의 심장이자 얼굴이요, 나아가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을 상징하는 공간이기에 광고의 중요한 이미지로 활용했다. 광...
▲ 한글 나비(작가: 호진)
구찌가 왜 광화문을 배경으로 광고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광화문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서울의 심장이자 얼굴이요, 나아가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을 상징하는 공간이기에 광고의 중요한 이미지로 활용했다. 광화문은 단순히 경복궁의 정문이 아니라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반드시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구찌가 만든 광고를 보면 저곳이 대한민국인지 중국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현판에 사용된 글씨도 무언가 억지스럽고 기운생동이 없어 보인다. 무엇이 이런 문제를 만들고 있을까.
음악, 영화, 드라마, 경제 등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전 세계인들이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는 것에 열광하고 있다. 2023년 필자는 시드니한국문화원 초청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에 대한 주제로 강연과 글씨 수업 등을 위해 방문한 적이 있다. 이때 글씨 수업에 참여한 한 청년은 계속 나를 보고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한국의 ‘순대’를 너무 좋아해서 그것을 한글로 써보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와서라고 그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 청년은 중국 출신이었다. 스페인과 인도네시아에도 전시 등 같은 목적으로 방문했었는데,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한국어와 한글을 배운 이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반드시 찾는 곳이 광화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을 맞는 것은 ‘門化光’이다. 한자를 모르는 내국인은 물론이고 외국인은 더더욱 낯설다.
지금의 광화문 현판은 2005년까지는 한글 현판이었다. 6·25 때 불타 없어진 광화문을 1968년 콘크리트로 복원한 후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로 한글 현판을 만들어 달았다. 2010년 문화재청은 콘크리트를 철거하고 광화문을 원형 복원하면서 한글 현판을 내리고 한자 현판을 걸었다. 이후 현판에 금이 가 수리를 하려다 바탕색이 잘못된 것을 알고, 다시금 만들어 2024년에 달았다. 그러나 현판에 사용된 한자 글씨는 1900년대 초, 아주 작고, 멀리서 찍은 희미한 사진에서 스캐닝하여 크게 확대하다 보니, 잘 보이지 않는 윤곽선은 상상으로 그려서 만든 죽은 글씨이다. 서예가 갖추어야 하는 기운생동도 없고, 현재의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상징하지도 못하고 있다. 처음부터 한글 단체 등은 새로 지은 광화문에 맞게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을 주장했지만, 기어코 한자 현판을 걸었다.
왜, 광화문 현판만큼은 훈민정음체로 하자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글은 유일하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고, 대한민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 광화문의 글자는 여전히 한자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한자를 고집할 것인가.
필자는 2020년 ‘광화문 현판만큼은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 공동대표를 맡고 있을 때, 이 운동을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방안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광화문’ 세 글자를 집자하여 축소 예시 현판을 만들었다. 이 현판 사진을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께 보여 드린 후 자문을 구하였다. “보통 현판이 네모난데, 훈민정음 해례본체는 그 현판에 꽉 차면서 정말 잘 어울리고, 디자인적으로 굉장히 아름답다.” 특히 “광화문의 문화재 가치는 땅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새로 만들었으니, 현판도 이 시대에 새롭게 만들어 달면, 그것이 20년 100년 지나면 진짜 문화재가 되는 것이다. 훈민정음체로 바꿔단다면 누구의 글씨로 하느냐 하는 소모적인 논쟁도없을 것이다.”라며 이 운동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었다.광화문 현판만큼은 훈민정음체로 교체해야 한다는 명분을 이보다 더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돌아보면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산업 발전의 밑거름은 한글이 있어서 가능했다. 광복 전에는 문맹률이 80%에 이르렀다. 광복 이후 1953년 정부가 ‘문맹국민 완전퇴치 계획’을 세운 후 민관 합동으로 한글 교육을 실시하여 1958년경에는 문맹률이 거의 10%대 이하로 뚝 떨어졌다고 한다. 좀 똑똑한 이는 하루아침에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도록 만든 한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온 국민이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지적 향상은 곧바로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으로 이어졌다. 경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가장 빨리 수용하고 꽃피운 나라가 되었다. 무엇보다 문화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밑거름이 한글이다. 이렇게 우리는 한글에 많은 빚을 지고 있지만, 정작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안에는 그 어떤 한글 관련 기념관이나 심지어 표지석 하나 없다.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종께서 한글을 만들 때 소리를 하늘과 땅, 사람으로 나누고 합하는, 즉 해체와 조합이라는 문자 창제 방식은 “중심부에 개입해 그 고정성과 절대화를 흔들면서, 중심부가 지닌 한계를 짚어내게 하면서, 억눌려졌던 주변부들을 드러나게 한다.”는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와도 맞닿아 있다. 당시 한자를 사용하는 지배계급인 양반 중심 사회를 한글로 흔들어 주변부 즉, 일반 백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 세력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통합의 정신이 녹아있다.
훈민정음체 광화문 현판을 만들어 거는 것을 한자를 배척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역사의 기록이 한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경우에는 한자든 영어든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광화문현판 훈민정음체로 바꾸기 위한 운동도 ‘광화문 현판만큼’은 훈민정음체로 교체하자는 뜻이지, 한자 현판을 모두 바꾸자는 주장이 아니다.
그리고 ‘독립문’처럼 기존의 한자 현판과 새로운 훈민정음체 현판 둘 다 거는 방법도 있다. 정문 즉 들어가는 문에는 ‘훈민정음체’ 현판을 걸고, 나오는 문에는 ‘한자’ 현판을 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한글 단체도 대체적으로 같은 의견이라 할 수 있다.
마침 오는 6월 3일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새 정부가 출범한다. 새 대한민국을 여는 중차대한 시점에서 한글의 첫 모습인 훈민정음체로 광화문 현판을 교체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국운 상승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세종께서 한글을 만든 가장 근본적인 정신은 모든 백성이 읽고 쓰기를 통해 자신만의 문화생활을 누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대동세상을 열겠다는 뜻이다. 이른바 생생지락(生生之樂)의 세상이다.
21세기 첨단 디지털 시대에도 널리 이로운 문자 한글을 빛내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소명이다. 광화문 현판을 훈민정음체로 바꿔 달고, 진짜 ‘문화강국’으로 우뚝 서자.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