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음1446 ⓒHaan+ 17년 긴 여정, 1426년부터 시작된 세종의 고민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공식 발표한 것은 1443년 12월이다. 그런데 이 위대한 문자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졌을까? 당연히 아니다. 《세종실록》을 살...
정음1446 ⓒHaan+
17년 긴 여정, 1426년부터 시작된 세종의 고민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공식 발표한 것은 1443년 12월이다. 그런데 이 위대한 문자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졌을까? 당연히 아니다. 《세종실록》을 살펴보면, 세종의 새 문자에 대한 깊은 고민은 공식 발표보다 무려 17년 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1426년, 긴 여정의 출발점
이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은 1426년(세종 8) 10월 27일 자 실록이다. 세종이 즉위한 지 8년, 나이 서른이 되던 해였다. 이날 세종은 "사람과 법은 함께하는 것(人法竝用)"임을 강조하며, 당시 법률문이 복잡한 한자와 이두로 되어 있어 문신들조차 알기 어렵고 배우는 학생들은 더욱 어렵다고 지적했다.
양반 문신들도 어려워하는 한문 법률서를, 글을 모르는 백성이 어찌 알겠는가. 이것이 훈민정음 창제 17년 전, 세종이 문자 문제를 공식적으로 고민한 첫 기록이다. 필자는 바로 이 시점이 세종의 문자 개혁 고민이 시작된 '긴 여정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1432년, 이두문(吏文) 번역 시도와 기득권의 반발
세종의 고민은 곧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졌지만, 지배층의 반발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6년이 흐른 1432년(세종 14) 11월 7일, 세종은 신하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비록 백성들로 하여금 다 법률문을 알게 할 수는 없을지나, 따로 큰 죄의 조항만이라도 뽑아 적고, 이를 이두문으로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여 보여, 어리석은 지아비와 지어미들로 하여금 범죄를 피할 줄 알게 함이 어떻겠는가?"
그러나 세종의 최측근 신하인 허조가 즉각 반대했다. "백성들이 문자를 알면 부작용이 커진다"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기득권층의 반발이 얼마나 거셌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세종은 포기하지 않고, 옛 기록에서 백성을 가르친 성공 사례를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정음1446 ⓒHaan+
1434년, 파격 시도, ‘세계 최초 교육용 만화책’
그리고 2년 후인 1434년, 세종은 놀라운 발상을 실행에 옮겼다. 바로 그림(만화)을 곁들인 《삼강행실도》 제작이었다. 문자를 모르는 백성도 그림으로는 충분히 효자, 충신, 열녀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이 책은 일종의 임금이 직접 기획한 세계 최초의 '교육용 만화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은 이 책을 종친과 신하들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 배포했다. 그해 11월 실록 기록은 "한자를 모르는 어린아이와 민가의 여성들까지도 그 내용을 알게 하도록" 지시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림만으로는 백성 교화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복잡한 내용을 심도 있게 전달하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백성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길게 보면 1426년부터 세종은 문자 문제를 고민했고, 짧게 보면 1434년 《삼강행실도》를 통한 간접 교화의 한계를 절감한 이후, 비로소 본격적인 새 문자 창제 연구에 착수했을 것이다.
실제로 《삼강행실도》 제작 이후부터 1443년 훈민정음 창제 발표까지 약 9년간, 세종의 새 문자 관련 기록은 《세종실록》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이는 세종이 사대부들의 반발을 의식하여 철저히 비밀리에 연구를 진행했음을 보여 준다.
17년의 결실, 세종이 품은 마음
1426년의 첫 고민에서 1443년 창제 발표까지 무려 17년. 이 기나긴 여정은 단순한 문자 발명이 아니라, 지식 독점의 벽을 허물고 모든 백성에게 평등한 소통 기회를 주려 했던 세종의 혁명적 사건이었다.
580년이 지난 지금도 세종이 품었던 그 마음,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했던 그 정신은 디지털 시대의 정보 격차 해소라는 오늘날의 과제에 깊은 울림을 준다. 세종이 오늘날 살아있다면, 또 어떤 혁신을 꿈꾸었을까?
정성현 / Jeong Seonghyeon
한글닷컴(Haangle.com) 인문미디어연구소장, 세종국어문화원 인문학연구소장
김슬옹
한글닷컴(Haangle.com) 한글연구소장/편집위원, 세종국어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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