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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답사 길에서 만난 참 인연들

방언 답사는 살아서 펄펄 뛰는 언어를 만나는 일이다. 각 언어공동체에서 사용하는 말은 균질하게 유지하려는 성질도 있지만 변하여 다르게 되려는 성질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언 답사를 가려고 녹음기, 마이크 질문지 등을 가방에 넣으면서 이번에 만나...

방언 답사는 살아서 펄펄 뛰는 언어를 만나는 일이다. 각 언어공동체에서 사용하는 말은 균질하게 유지하려는 성질도 있지만 변하여 다르게 되려는 성질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언 답사를 가려고 녹음기, 마이크 질문지 등을 가방에 넣으면서 이번에 만나게 될 새롭거나 특이한 지역 말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언어를 공부하는 글쓴이에게 새롭게 알게 되는 지역 말의 특징은 보통 즐거운 일이 아니다.

글쓴이는 방언 성조와 성조 변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 내가 성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훈민정음 어제 서문을 배울 때 글자 왼쪽에 찍힌 방점이 높낮이를 표시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방언학을 배울 때 강원 방언에 성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강원 방언 성조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다. 삼척시 하장면으로 방언 답사를 떠난 것이 성조 연구의 시작이었다. 그 뒤로도 강원 방언 성조를 만나 는 답사 여행은 정선군 동면(화암면), 평창군 진부면, 영월군 김삿갓면으로 이어졌다.

방언 답사는 새로운 인연을 맺는 만남이다. 방언 답사를 가면, 제일 먼저 지역 말을 가르쳐 주실 제보자를 만나야 한다. 사실 방언 답사의 성패는 제보자 선정에 달려 있다. 사람들마다 제보자를 만나는 경로는 다 다르겠지만, 글쓴이는 마을 이장님께 찾아가서 마을의 토박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소개받거나 지역 주민센터에 가서 제보자 후보를 추천받고, 방문을 드리곤 했다. 이 글은 답사 여정 중 제보자와의 만남에서 있었던 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쉬기르 맹글어 [말:] 사람들하구 먹자
아라리의 고장으로 유명한 정선은 교통이 발달한 지금도 쉬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정선으로 들어가 는 입구에는 어떤 길을 선택해도 높은 고개와 재가 진을 치고 있다. 사람들이 왕래가 쉽지 않은 정선에서의 첫날은 왠지 좋은 공부를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 왔다.

일주일 전에 약속을 정하고, 오전 10시쯤 정선군 동면(화암면)에 있는 제보자 집을 방문했다. 여러 차례 방문을 한 터라 평소 즐겨 드시는 맥심 커피 한 상자를 들고 집에 들어서니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와 웃음 소리가 크게 들렸다. 들어서는 나를 본 할아버지께서 나오면서 말씀하신다.

“어서 와유. 오랜만에 만나니 참말로 방굽네유.”

그리고 나의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시면서 마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소개를 하신다.

“우리 딸이래유.”

마을 사람들께 인사를 드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정선 말을 배우러 왔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를 하신다.

“정선 말은 서울말보다 뚝뚝하지.”
“감자르 감재라구 하구 수제비르 봉그레기라구 그러지….”

한참 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정선 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살며시 집안에 계시는 할머니께 가서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물었다.

“날은 무슨…. 할아부지가 [말:] 사람들 마커 불렀지. 딸 자랑하려구. 지금 가쉬기 맹글어 [말:] 사람하구 먹으려구.”

사실, 도착하자마자 방언 조사를 하려고 일정을 짰던 터였다. 계획대로 방언 조사를 못해서 속이 상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온 나를 딸같이 여겨서 마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할아버지 마음을 알았을 때, 너무나 부끄러웠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고마움을 느꼈다. 가쉬기(칼국수)를 다 함께 먹고 난 후에도 마을 사람들과 정선 말, 민담, 전설 등을 더 들어야 했다.

오대산 상고대를 보다
평창 방언 답사지는 오대산이 있는 진부면이다. 나는 평창 방언 답사 기간에 따로 숙소를 정하지 않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댁에서 방언 조사와 숙식을 했다. 4일간 8시간 동안 방언 조사로 인해 팔다리가 아픈 것을 느끼면서 아침에 일어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미 일어나셔서 감자 선별 작업을 한차례 하시고 아침밥을 먹자고 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식사를 하시면서, “우리는 이렇게 앉아서 공부하는 것은 직성에 안 맞는다.”고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8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서 평창 말을 말씀해 주시는 일이 쉽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어제 할아버지가 ‘미꾸라지’의 방언형을 ‘지름재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이야기를 다시 하면서 할머니께서는 “나는 다 잊어버렸는데 당신은 어렸을 때 했던 말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시면서 한참을 웃었다. 아침을 다 먹어갈 무렵 할아버지께서 “오늘은 또 얼마나 해야 되냐?”고 물으셨다. 오늘은 오전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월정사를 구경하고 난 후에 점심을 먹고 와서 3시간 정도 방언 조사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방언 답사는 나에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우선 궁금하고 관심이 있는 성조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방언 답사이다. 특히 강원 방언의 성조는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그 변화의 과정을 살뜰히 알고 싶다. 다른 한편으로 방언 답사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즐기지 않는 나의 삶에 즐겁고 행복한 삶의 방점을 찍을 수 있는 기회이다. 지금까지의 방언 답사가 의미가 있는 것은 정선과 평창에서 지역 말을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계시기에 가능한 일이다. 진정 많은 은혜를 입었다. 지금 이 순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보고 싶다. 날이 밝으면 전화를 드려야 하겠다.




최영미

최영미

경동대 교양교육학부 부교수

heyum9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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