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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공간의 국어 교과서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함으로써 조선은 36년에 걸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로써, 까닭 없이 빼앗기고 억눌리고 금지되고 뒤틀렸던 것들이 본디의 모습을 되찾고 제자리로 돌아올 계기가 마련되었다. 대일항쟁기, 특히 그 ...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함으로써 조선은 36년에 걸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로써, 까닭 없이 빼앗기고 억눌리고 금지되고 뒤틀렸던 것들이 본디의 모습을 되찾고 제자리로 돌아올 계기가 마련되었다. 대일항쟁기, 특히 그 후기에 들어서 혹독한 탄압을 받았던 우리글과 우리말도 마찬가지였다.

9월 8일 인천항에 상륙한 미 육군은 이튿날 조선총독의 항복을 접수하였고, 9월 20일에는 38도선 이남 지역의 통치를 위해 군정청을 설치하였다. 이는 자주적 정부의 즉각적 수립을 염원한 다수 민중의 바람에 반하는 것이었는데, 군정의 각 부서들은 한국인 지도자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협치의 모양새를 갖춤으로써 이를 무마하고자 하였다. 

문교 행정을 담당한 학무국이 한국인들로 구성된 조선교육심의회를 운영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심의회는 홍익인간을 교육의 근본이념으로 삼고, 6-3-3-4년의 학제 및 초등 과정의 의무교육 도입, 교과서 서술의 한글 전용 등을 의결했던 바, 한글 전용의 원칙은 언어 대중의 말글살이를 올곧게 세웠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자못 심장하다.

당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교과서를 펴내는 일이었다. 학교 현장에서 우리 말글을 가르칠 교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을 총괄한 이는 조선어학회 수난으로 수감되었다가 일제의 패망으로 풀려난 최현배였다. 주시경의 언어 민족주의와 한글전용의 신념에 투철했던 그가 교과서 편수의 책임을 맡게 된 것은 한글과 국어가 가야 할 바른 길이라는 측면에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최현배는 말본 교재의 집필과 우리말 도로 찾기에 매진하는 한편으로, 국어 교과서의 편찬에도 혼신의 힘을 다했다. 대일항쟁기 말기에 학교에서 조선어 사용과 교수를 금지한 탓에 우리 말글을 모르는 학생들을 위해 펴낸 최초의 교과용 도서는 『한글 첫걸음』이다. 군정청 학무국이 설치된 지 불과 한 달 반밖에 지나지 않은 11월 6일에 100만 부를 인쇄해 학교 현장에 보급한 『한글 첫걸음』은 최현배를 비롯한 당시의 집필자·편찬자들이 국어 교과서의 편찬 보급을 얼마나 화급한 과제로 인식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조선어학회가 저작한 이 책은 문맹자가 많았던 당시 문해용 교재로도 널리 사용할 수 있도록 자모 익히기와 낱말 학습 위주의 내용과 체제로 구성되었다.

이 해 말에는 우리 말글을 가르치는 데 요긴한 사항들을 담은 교사용 지침서인 『한글 교수지침』과 초등학교 1, 2학년용 『초등국어교본 상』이 발행되었다. 이 책들은 조선어학회의 정인승·장지영과 당시 교육계 인사들이 두루 참여하여 수록 내용의 기틀을 마련하고 집필한 책이지만, 둘 다 표지와 판권장에는 조선어학회가 지었다고 표시되어 있다. 

해방 후 최초의 관찬본 국어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초등국어교본』은 상권에 이어 중권(3, 4학년용, 1946년 4월), 하권(5, 6학년용, 5월)이 잇따라 펴 나와 초등과정의 국어 교수에 활용되었다. 이 무렵 마찬가지로 조선어학회가 저작한 중등학교의 국어 교과서인 『중등국어교본』도 상중하 3책으로 발행되었다. 당시 6년제였던 중학교에서 한 권의 책을 2년에 걸쳐 사용할 수 있게 구성한 것이다.

▲ (시계 방향) 1945년 『한글 첫걸음』, 1945년 『초등국어교본 상』,1947년 『초등국어 2-1』, 1948년 『바둑이와 철수(국어 1-1)』.

이들 ‘국어교본’들은 임시교재의 성격을 지닌 것들이다.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 5일에는 체제와 내용이 새로운 국어책이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바둑이와 철수(국어 1-1)』이다. 최현배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 편수국에서 함께 일했던 최창해가 집필하고 구본웅이 삽화를 그렸는데 1948년 초판본에 보이는 야수파 풍의 삽화가 초등 1학년에게 난해하다는 지적에 따라 1949년판부터는 김태형이 그린 삽화로 교체되었다. 한국 근현대 교과서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이 책은 전권에 걸쳐 단일하고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바탕으로 서술되어 우리의 대표적인 교과서로 꼽아 손색이 없다 할 수 있는데, 어느 단체는 이 책의 초판본이 발행된 날을 기려 ‘교과서의 날’을 제정하기도 했다.

초등용 국어교과서의 경우 『초등국어교본』 3책이 완간된 1946년 5월 직후 시점부터 각 학년이 학기별로 사용할 책들도 속속 편찬되기 시작했다. 1949년 12월, 마침내 그 마지막 책인 6학년 2학기용 『초등국어』가 선을 보임으로써 매 학년마다 학기별로 사용할 12책이 모두 완간되었는바, 이로써 해방 이후 초등 국어 교육이 본격적인 기틀을 갖추기에 이른다.

해방 공간의 국어 교과서는 오늘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말글살이에 최초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에서 되새길 대목이 적지 않다. 열악한 시대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내에 우리 말글의 교육을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던 데는, 1910년대 초반 주시경이 착수했던 ‘말모이’에 뿌리를 두고 1930년대 이래 본격적으로 추진된 조선어학회의 국어사전 편찬과 더불어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나 표준말 제정을 위한 노력들이 값진 밑거름이 되었음은 새삼 말할 나위 없다 할 것이다.




김한영

김한영

참빛아카이브 대표

oldbooks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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