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Nav

에디터정보

Haangle Latest

latest

내가 만난 세종(19) ≪훈민정음≫ 해례본의 세종 평가 의미 : 모두가 지혜로운 이가 되는 길을 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이 직접 펴낸 책인데 이 책에서 세종을 평가하다니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자화자찬이라도 한 것일까? 한없이 겸손했던 세종이 그럴 리가? 그래서 해례본의 특이한 짜임새를 이해해야 한다. ≪훈민정음≫...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이 직접 펴낸 책인데 이 책에서 세종을 평가하다니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자화자찬이라도 한 것일까? 한없이 겸손했던 세종이 그럴 리가? 그래서 해례본의 특이한 짜임새를 이해해야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이 대표 저자이긴 하나 전체로 보면 9명의 공저이다. 그렇다고 모든 저자들이 공평하게 참여한 일반 공저와는 다르다. 해례본은 모든 33장 66쪽인데 앞 4장의 7쪽(정음편) 분량을 세종이 직접 저술하고(8쪽은 빈 면) 나머지 58쪽 분량(정음해례)은 세종이 지은 정음편을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 여덟 명이 자세하게 풀어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종 평가는 8인이 쓴 정음해례편에 나온다.

첫 번째 평가는 세종을 하늘의 뜻을 받은 성인(聖人)으로 평가하고 있다. 해례본의 제자해에서 세종의 명에 따라 훈민정음 창제원리와 배경 설명을 마친 8학사는 제자해 끝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吁. 正音作而天地萬物之理咸備 其神矣哉. 是殆天啓聖心而假手焉者乎[정음해례9ㄱ4-6_제자해] 아아! 정음이 만들어져 천지 만물의 이치가 모두 갖추어졌으니, 아 신묘하구나! 이는 바로 하늘이 성인(세종)의 마음을 열어, 솜씨를 빌린 것이로구나. _김슬옹(2018). ≪훈민정음해례본 입체강독본≫. 박이정.

훈민정음 제자 원리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나니 훈민정음에 천지 만물의 모든 이치가 빠짐없이 담겨 있어 신비하고 기묘할 정도인데, 그런 신묘함은 하늘의 뜻을 이어받은 성인 곧 세종만이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종을 하늘이 내린 성인으로 칭송했다.

정음해례 마무리에서 정인지는 직설적으로 세종을 하늘이 내린 성인이라고 말하고 더 충격적인 평가를 덧붙이고 있다.

恭惟我殿下, 天縱之聖 制度施爲超越百王. [정음해례29ㄱ:1-3_정인지서]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지으신 법도와 베푸신 업적이 모든 임금들을 뛰어넘으셨다. _김슬옹(2018). ≪훈민정음해례본 입체강독본≫. 박이정.

사실 ‘백왕초월’ 모든 임금을 뛰어넘었다는 말은 중국 황제한테만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도 8명의 신하들은 거침없이 쓰고 있다. 글쓴이는 대학 시절, 이 표현을 처음 보고, 이런 말은 중세 시대에 신하들이 임금에게 바치는 아부 수준의 칭송인 줄 알았다. 그 뒤로 세종 연구 전문 학자로 세종을 연구해 온 지 30년이 흘렀다.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저 말에는 단 1% 과장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이런 말을 하면 세종을 영웅화하거나 신격화하는 것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꽤 많다. 세종과 그의 업적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가벼운 말들이다.

정인지가 왜 이런 평가를 내렸는가, 그 답도 정인지서에 나와 있다.

夫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務之大智 盖有待於今日也欤. [정음해례29ㄱ:5-7_정인지서] 무릇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꽤 오래되었지만, 만물의 뜻을 깨달아 모든 일을 온전하게 이루게 하는 큰 지혜는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의 이치인 만물의 뜻을 깨달은 사람이 성인이고, 만백성을 지혜롭게 하는 임금이 성군이다. 그렇다면 하늘의 이치를 백성들한테 가르치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혼자 깨달아 유유자적하는 이는 성인일 수 없다. 그렇다면 그런 깨달음은 서책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한자, 한문으로 된 책은 너무 어려워 누구나 지혜로운 이가 될 수 없다.

그런데 만물의 이치를 온전히 담았을 뿐 아니라, 지식과 지혜를 제대로 나눌 수 있는 문자가 나왔으니 그런 문자를 만든 이가 진정한 성인이고 모든 임금 위에 있는 진정한 성군이라는 것이다. 만일 15세기 중국의 정치가나 학자 가운데 이 말의 어마무시한 의미를 안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세종은 황제의 권위에 도전한 임금으로 많은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

결국 세종은 스스로 성인이어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성인이 될 수 있는 큰 지혜의 길을 열어 위대하다.

▲ 김슬옹 글/강수현 그림(2015). ≪누구나 알아야 할 훈민정음, 한글 이야기 28≫. 글누림. 29쪽. ©



------------------------------
위 글은 <세종신문>에 필자가 연재했던 것입니다.





김슬옹

김슬옹

한글닷컴(Haangle.com) 연구소장/편집위원, 세종국어문화원장



댓글 없음

Latest Articles

LANGU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