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음1446 ⓒHaan+ 세종의 전략적인 선택, 의외의 목판본 "당연히 금속활자겠지?" 많은 이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세종 시대의 조선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선진국이었기 때문이다. 더국나 해례본이 나오기 불과 ...
정음1446 ⓒHaan+
세종의 전략적인 선택, 의외의 목판본
"당연히 금속활자겠지?"
많은 이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세종 시대의 조선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선진국이었기 때문이다. 더국나 해례본이 나오기 불과 12년 전인 1434년, 세종은 가장 정교한 금속활자 '갑인자(甲寅字)'를 세상에 선보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놀랍게도 훈민정음 해례본은 목판본이다. 붓으로 쓴 글자를 나무에 새겨 찍어낸 책, 즉 ‘구식’기술로 여겨지던 목판 인쇄를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최신 디지털 인쇄기를 갖춘 출판사가 가장 중요한 책을 고전적인 목판으로 찍어내는 것과 같은 의외의 선택이었다. 세종은 왜 목판본을 선택했을까?
아직 명확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세종의 깊은 뜻을 추론해볼 수 있는 세 가지 단서가 있다.
첫째, 속도였다. 목판본은 금속활자본보다 대량 인쇄가 훨씬 빨랐다. 한번 판을 새기면 활자를 일일이 배열하고 해체할 필요 없이 계속 찍어낼 수 있었다. 금속활자는 정교하고 아름다웠지만, 공정이 복잡해 보급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둘째, 비용이었다. 목판본은 금속활자본보다 제작 비용이 적게 들었다. 해례본과 비슷한 시기에 《용비어천가》를 550질이나 찍어냈다는 기록은 목판 인쇄의 경제성과 대량 보급 능력을 뒷받침한다.
셋째, 세종의 간절함이었다. 그는 새 글자를 "좀 더 빨리" 백성들의 문자로 만들고 싶어 했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독서광 임금은 알고 있었다. 한자로는 백성을 교화하는 지긱을 보급하려는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최선의 선택
여기서 우리는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최고의 기술이 항상 최선의 선택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종은 당대 가장 정교했던 금속활자 기술을 포기하고, 대신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빨리 닿을 수 있는 목판 인쇄를 선택했다.
기술을 통한 자랑이 아니라 목적 달성에 최적화된 방법을 택한 것이다. 게다가 이 목판본의 한글 글꼴은 세밀한 판각 효과로 손 붓글씨와도 다르고, 금속활자 못지않은 정교함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의 선택이 아니라 백성에게 보급한다는 목적을 향한 명확한 전략이었다.
정음1446 ⓒHaan+
훈민정음 해례본이 살아남은 이유
한자가 목숨이고 권력이었던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서, 훈민정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책의 형태'로 세상에 선보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교수가 감동한 지점도 바로 이것이었다. 문자사에서 대부분의 문자들이 돌에, 뼈에, 동물 껍데기(갑각)에 새겨져 등장했던 것과 달리, 훈민정음은 목판에 새겨지고 종이에 인쇄된 ‘책’의 형태로 세계사에 등장했다. 책은 빠른 시간, 많은 사람에게 지식을 전파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다.
세종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질문
오늘날, 세종은 우리에게 시대를 초월하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최고의 기술과 권위를 자랑하기 위해 일하는가? 아니면 더 많은 사람의 유익함을 위해 그 가치를 널리 보급하려고 일하는가?"
금속활자가 아닌 목판본으로 찍어낸 훈민정음 해례본. 당시 가장 정교한 기술마저 포기하고 오로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를 하루빨리, 더 많이, 더 널리 전하고자 했던 선택! 나무에 새긴 그 글자들은 지금도 세종의 숭고한 뜻을 담고 숨을 쉬며, 우리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기술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정성현 / Jeong Seonghyeon
한글닷컴(Haangle.com) 인문미디어연구소장, 세종국어문화원 인문학연구소장
김슬옹
한글닷컴(Haangle.com) 한글연구소장/편집위원, 세종국어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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